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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도(白蓮社圖)<Cent vingt-quatre>

guem56 2011. 8. 11. 14:34

자금성

넓고 깊어서 걸어가면 한참 걸린다

 

마지막 황제 푸이가 1924년 군벌 펑위샹(馮玉祥)에게 쫓겨나

자금성에서 거처를 나온다

 

그 전에 푸이는 동생을 시켜 상자 하나를 몰래 운반해 내니

거기엔 청명상하도 같은 귀한 서화가 있었고

백련사도 그림 역시 그렇게 푸이가 만주까지 가져갔다

 

소련군이 들어오자 푸이는 그 서화상자를 가지고

일본으로 비행하려 했으나 체포되었고

전범 재판과정에서 일본을 거쳐 다시 공산당이 장악한 중국으로 가서 감옥살이를 했고

나중에 유소기와 주은래의 배려로 출옥하여 정원사 노릇을 한다

 

백련사도(白蓮社圖)는 색채보다는 선의 윤곽으로

생동감을 나타낸다는 백묘화법의 그림인데

등장인물이 31인이고 온화하고 담담한 얼굴의 스님과 도사

그리고 시동들이 이런 저런

자리를 마련하여 서있기도 하고 담소하기도 하는 여러 장면의 그림이다

 

루산(廬山여산)은 양쯔강 인접한 산이다. 물의 도시 쥬장(九江)에 있다

구강은 백낙천의 비파행이 나온 곳이며

여산 기차역 서쪽엔 도연명 기념관이 있고

그 동쪽엔 서림사와 동림사(東林寺)가 있다

 

관동별곡에 여산진면목이란 이야기 나오거니와

금강산 관광길에 오른 송강이 적기를

이적선(이태백) 다시 환생해 물어보면 여산이 금강산 보다 낫다는 소리 못할거다 하여

이 구절에 나오는 비교격 조사라고 하던가? 도곤이란 말을 외우던 때가 머리깍고 고등학교 다니던 때이며

 

미군들이 오렌지에이전트(Orange Agent 고엽제)를

봄내시 캠페이지 영내에도 뿌렸다고 하던 그 시절이다

 

 

동진시대 도연명 동시대에 혜원(慧圓)이란 고승이 있어

구강의 여산 동림사에 기거하면서

선풍과 도학을 진작하려 123인의 승려와 도사들을 결집하여 결사를 여니

이것이 백련사이다

 

소동파 살던 북송시대 이공린이란 화가가

백련사 모임을 상상하여 백련사도를 남겼고

그것이 바로 푸이가 그 진가를 알아보고 몰래 유출시킨 그림이다

 

백련사도 말미에 장격(張激)이란 사람의 발문이 붙어 있는데

이 글을 잘 살펴보면

이공린은 장격의 외삼촌이고 삼촌의 그림을 존숭한 장격이

원 그림을 본따서 임모한 것이 지금 전하는 백련사도라고 한다

 

그나저나

중국을 혼자 다닐 시간과 여유가 생긴다면 구강의 여산에 가봐야 할거 같다

 

가보고 싶은 곳은 많은데 몸은 오뚜기 처럼

힘을 쓰면 누웠다 제자리이니

나는 웃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