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진 명태 겨울이면 가까운 산에 눈이 덮이던 날 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들고 털장갑에 실이 풀린 채 팽이채 만들 닥나무 껍집을 할아버지 주머니칼로 다듬었다 매운 바람 따라 장이 서면 트럭을 타고온 꽁꽁 언 동태인지 명태가 지겟목에 매달려 흰연기 피어오르는 굴뚝을 찾아 골짜기로 잦아들고 .. 구운몽(九雲夢) 2013.06.10
힐링 힐링이란 말이 뜨는 때라 책표지나 텔레비전프로그램에 신문광고란에 여기저기 두루두루 퍼져서 하루에도 힐링을 열번 듣고 열번 보아야 날이 저문다 힐링엔 세가지 있으니 힐링을 베풀어주는 고마운 사람 힐링과는 별로 상관없이 하루가 가는 사람 그리고 힐링이 필요한 사람 처음엔 .. 구운몽(九雲夢) 2013.05.28
파리의 추억 오늘처럼 비가 내리고 더운듯 하다가 오싹하는 한기가 스미던 날 전봇대위에 갓을 쓴 동그란 전구아래 중국집 광춘원 더운 김이 올라오는 넓은 접시 윤기가 흐르는 짜장면 친구의 입으로 흰 면발이 검은 짜장덩어리를 더러더러 입술에 떼어놓으며 줄줄이 입장할 새 내 눈에 들어오는 파.. 구운몽(九雲夢) 2013.05.28
순대 닐이 저물기도 전에 순대는 내용물을 기다린다 오월의 찬란한 태양에 여섯살 어린이처럼 마냥 꿈에 부푼 것도 아니고 초중고 학생들이 줄줄이 옥상에서 떨어지고 청년들은 편의점에서 밤을 새우는 세월에 탄식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때되기도 전에 부피 큼직하고 뭔가 기름기가 도는 수.. 구운몽(九雲夢) 2013.05.23
추어탕 오월의 하늘엔 핏물의 강이 흘러 숱한 물고기들이 점점이 떨어진다 소금물에 자지러지는 미꾸라지 살아있는 동안 팔딱거리다가 살아온 흔적을 모두 토해내고 숨이 멎으면 뜨거운 열을 머금고 가루가 되어 먼 시골에서 겨울을 나고 올라온 시래기와 어우러져 은행과 세금과 자동차 매연.. 구운몽(九雲夢) 2013.05.23
시간의 갈래 영화 신세계에서 보면 황정민이 손에 구슬을 굴리며 골똘히 무슨 생각을 한다 시간이 흘러가는 길이와 속도는 일정한지 모르나 단위시간에서 생각의 집중도는 엄청 다르다 사람은 대개 지나간 시간 몇 년 전 더 올라가 10년전 그때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다시 그 시절이라면 서울에 가거.. 구운몽(九雲夢) 2013.05.18
박인환 설악에서 내린 물이 뗏목을 띄워 마포나루까지 가더라는 인제의 강 말을 탄 삼연선생 백담사의 만해가 오고간 길 합강아래 인제읍 박인환기념관 오늘은 삼월 열이렛날 그래서 나는 망각의 술을 마셔야 한다 박인환은 이상이 떠난 날 이런 시구를 남기고 술바다를 유영한뒤 아주 먼 바다.. 구운몽(九雲夢) 2013.05.16
을의 얼굴 배를 삼키는 높은 파도가 일거나 갈매기가 물자맥질을 즐기는 평면이거나 심연은 짙푸르고 고요하다던데 을의 얼굴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잔잔한 미소가 표면을 덮는다 배가 아파도 머리가 어지러워도 뒤가 급해도 어린이나 어른이나 이웃이나 낯선 사람에게나 버킹검 궁전 앞 근위병 .. 구운몽(九雲夢) 2013.05.14
윤동주 달을 쏘다 개구리가 밤새 울던 논위에 아파트가 설 무렵 밤이면 흑백 텔레비전을 보던 때 문익환 목사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잘 모르나 남북이 오고가고 통일이 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로 기억한다 한참 뒤에 문익환과 윤동주가 친구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정병욱교수는 .. 구운몽(九雲夢) 2013.05.13
옌안 가는 길 그해 여름은 더웠고 가을엔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 12월에 시내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있었다 봄과 여름 내내 누구나 20점 다 맞는 체력장을 거의 매일 하다 보니 학교 다니는게 몸도 마음도 힘들었는데 9월 어느날 체력장 시험이 끝나고 영화 빠삐용을 165원을 내고 본 날 뒤로는 체육은 수.. 구운몽(九雲夢) 2013.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