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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안석 양계초

guem56 2012. 6. 4. 11:15

 강릉이나 속초에서 서울 가는 길이  포장이 안되어 있던 때

아침 밥을 먹고 버스를 타면 캄캄한 밤에 전기불이 번쩍번쩍하는 서울에 닿았다

 

진부령 가는 길에 단일로가 있어서

버스 한 대가 지나가려면

 

양쪽을 지키는 초소에서

군인들이 유선 전화로

들어가고 나가는 차를 확인해서 한참 기다리다 통과하였다

 

홍천에서 인제를 거쳐 진부령 넘고 푸른 바다 보러 가면

그래서 길은 멀고 꼬불하고

가다가 멀미를 했다

 

철정검문소에서 속초가는 길 옆으로 다리를 건너면 

내촌을 거쳐 아홉 살이 고개로 들어간다

 

저녁에 서녁노을이 불그스름하면 넓직한 고원은 모습이 장관이다

옛날에 호랑이가 많이 뛰어다녔을 듯 한데

숱한 나무는 625때 재가 되고

새로 나온 나무들이라 숲이 웅장하지 못한 듯 하다

 

그 고개 넘어가면 미산이 있다

상남에서 미산 들어가는 길가엔 논이 좀 있고

여름날밤 그 논에서 우는 개구리 소리는 천지를 집어 삼킨다

 

지금은 미산천이 아스팔트 길을 놓아 그 아름다운 모습이 다 죽었으나

예전 미산 개울 모래밭에 앉아 있었던 기억은 세월이 가도 새롭다

다시 그런 곳을 구경하기 힘들다

 

나는 진동가는 길이나 미산에서 살둔가는 길을 왜 놓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 미산 개울가에서 <여한십가문초>라는 책을 읽었다

30년 지난 날 지금 그 책은

종이가 세월의 좀을 먹어 검은 색으로 되었으나

아직 활자는 볼만하다

거기 서문에을 쓴 사람이  양계초다

 

세르비아 전쟁을 언급한 구절을 보면

이 글을 양계초는 망명한 김택영의 청을 받아서

1914년 세르비아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암살되고 난 이후  쓴듯하다

 

언젠가 소순의 <변간론>을 고문관지에서 읽었는데

거기 해설에 왕안석을 염두에 두고

그러니까 소순이 왕안석을 간신으로 보고 이글을 썼다고 되어 있다.

 

백가강단의 왕안석편을 들어보니

중국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개혁가로

양계초는 왕안석을 손꼽았다는 말이 있었다

 

임진년 올해

더운 여름날을 앞두고

우연히 <왕안석전>을 구해다 놨는데 그 저자가 양계초이다

 

책은 두꺼워서 언제 읽을지 모르고

내용을 알아들을 만한지도 모른다

 

양계초는 캉유웨이의 제자라 들었고

캉유웨이는 정치를 떠나 별도로

대단한 서예가이며 그가 <광예주쌍즙>을 지었음을 알았다

 

포세신의 <예주쌍즙>을 구해보려 했으나 아직 원문 전체를 못보아

광예주쌍즙을 살까 말까 미룬지가 한해가 지났는데

 

아마

등석여 포세신 강유위 양계초의 라인을 살피려면

아카시아 꽃이 서너번 피고 져야 하는데

 

읽을 책은 많은데

눈은 일일연속극에 함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