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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안석 천추세인 (千秋歲引)

guem56 2012. 12. 14. 16:53

千秋歲引

 

別館寒砧

孤城畵角

一派秋聲入寥廓

객사에 다듬이 소리

고성 피리소리

가을기운이 방으로 드네

 

東歸燕從海上去

南來雁向沙頭落

楚臺風

庾樓月

宛如昨

제비는 바다쪽 동으로 돌아가고

남에서 온 기러기 모래밭에 앉네

초왕이 시원한 바람 쐬던 누대

유량이 달을 보던 정자

어제일 같은데

 

無奈被些名利縛

無奈被他情擔擱

可惜風流總閒卻

명리도 속박이 아니고

초왕 유량의 정에 끌릴 것도 아닌데

풍류가 시드는 것은 섭섭하네

 

當初漫留華表語

而今誤我秦樓約

원래 신선이 되고자 했으나

지금은 아니라네

 

夢蘭時 酒醒後 思量著

달콤한 꿈

술이 깬후 생각은 여러갈래라

 

 

 

 왕안석은 개혁가로 재상을 지냈으나

시사(詩詞)와 명문을 남겼고

불교에도 깊이 심취하여

화엄경해를 저술했다

 

구양수의 추천을 받았으며

보수파로 알려진 사마광과 젊은 시절에는 절친한 친구였고

 

16년아래인 소동파와는

걸어간 정치행로는 차이가 있었으나 국량과 문장을 서로 존숭하는 마음의 지기요, 나라를 걱정하는 정은 각별했다

 

조선의 망명객인 김택영이

1914년 중국에서 <여한십가문초>를 펴낼 때

그 서문을 써준 양계초는

중국 역사를 통털어 가장 위대한 개혁가로 왕안석을 들었고

 

정강의 변(1127 송나라 휘종 흠종이 금나라 군에 잡혀간 일)이후

항저우 임안에 남송을 세운 고종은

북송이 망한 원인으로

왕안석이 요상한 변법을 만들어

신종의 혜안을 흐려 망조가 들었다고 왕안석을 간흉으로 지목했다

 

두고 두고 왕안석은 역사에서 그 공과에 대해 찬반이 갈린다

 

위의 <천수세인>은 왕안석이 타지에서 쓸쓸한 가을날을 보내며

소회를 읊은 노래인데 그 배경에 대해선 더 자세히 알아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