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 떠난 사람이 다시 오기도 하고
먼산 흩어진 구름이 모이듯이 살아서 한번 더 만나기도 하지만
그대로 헤어져
차세에 인연이 더 이상은 없을 수도 있다
휘영찬 달빛이
산자락 골짜기에 드리워
차디찬 시냇물이 푸른 솔에 월광을 튀어내니
하늘에 별빛이 수만갈래로 흩어지는 가을밤
낮술이 저녁술에 깨고
다시 술독 하나를 기울일 새
객청의 술손들의 웃음에 묻힐 뻔 하나
이경(二更)에 훤히 열린 대문
두 사람의 발걸음이 잡혔다
삼월이 오월이가 날렵하니
서녘 장독대를 오가니
필시 10여년 묵은 간장을 퍼감이며
이는 손님들이 좀 무거운 사람이렸다
밤은 깊어갔고
객들은 많이 돌아갔다
파립에 갓끈을 여미고
주렴이 겹겹이 늘어진
안채엔 아니나 다를까
매화옥주가
두 사람 손들을 대해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순배가 돌고 매화옥주는
젊은 손을 안내해서 자리를 물렸다
걸어나가는 매화옥주의
삼채(三彩) 저고리가
등에 달라붙었고 땀이 흐른 듯 보아
어지간히 글을 읽은 사람인 듯 했다
매화옥에서 좀처럼 내놓지 않는
소줏고리에서 방울 방울 떨어진
무색진향의 술이
육전 오색채 해물숙회까지 곁들여
정갈하게 소반위에 자리했다
새벽닭이 울때까지
나는 들었고 객은 나직허니 이야기를 풀었다
원매의 시
기윤의 문장
조명성 옹방강의 금석
명도 횡거의 변론
사령운 포조의 시
미불 산곡의 서까지
천년을 아래위로 오갔다
누군가 이야기를 할 때
알마초 술잔을 들어주고
역시 알마초 고개를 끄덕이면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뜻이다
고수의 리듬이나
청자의 추임새가 어긋나면
노래하는 사람은 흥을 잃는다
삼월이가 갈아논 먹물이
엉길 무렵이 될때까지
천리 장강의 물줄기처럼 오랫만에 들을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붓을 잡아 난이라도 칠 듯한 기세였으나
이미 술이 과했다
젊은 서생이 손을 모시고
희뿜한 새벽빛이 어둠을 물릴 새
매화옥주가 멀리 삼문까지 나갔다
인생이란 더러 슬프고 기쁘다
이런 손을 서너번 만나면 강산이 바뀌나니
안력(眼力)이 떨어져 책을 읽기 어렵고
손이 떨려 시를 적을 수 없다
아마 저 사람들은 몇년 뒤 다시 올듯하다
이번엔 내 이야길 들어야 하기 때문인데
사람의 앞일은 알 수 없어
다시 안온다면 필경 무언가 고단한 일이 있어서 일게다.......
갑오년 가을
시주생애(詩酒生涯)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