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고구마 풍양조씨...성대중

guem56 2010. 8. 21. 11:09

글이란 리듬이 있으면 격이 있고

읽는 맛이 있다

 

한유와 유종원의 글이 세월을 넘어 읽히는 이유가 그렇고

조선시대 김창협이나 성대중의 글을 보면 대(對)가 조화롭고

글의 마디가 간결하다

 

정조가 성대중의 글을 높이 산 이유가 있다

추사 김정희의 평생 지우이며 금석학의 대가인 풍양조씨 조인영이

성대중의 청성집의 서문을 고아한 예서로 썼다

 

1763년에 성대중은 조선 통신사 서기관으로

정사 신분인 조엄을 수행하여 일본에 다녀왔다

 

그 이듬해 귀국길에 쓰시마에서 고구마를 가져왔다고 한다

 

등산객 특히 바위를 타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원주 간현

섬강 줄기 근처에 조엄의 묘역이 있다

 

이 분이 평생 바르게 벼슬살이를 한듯 하나

정조 즉위후에 권신 홍국영에 밉보여 곤경에 처하고

아들 조진관의 자결을 불사하는 효성에 힘입어 사경을 벗어나 귀양을 가서

불우하게 세상을 뜬듯하다

 

바로 조진관의 아들이 조인영이다...

조엄의 묘역은 원주이고 조인영의 묘역은 춘천 지내리에 있다

 

김조순이 쓴 조진관의 행장을 보면

조진관의 묘는 원주에 있다가 영평 광석리(永平 廣石里)로

이장하였다고 한다

 

고구마는

항산화 기능이 뛰어난 비타민E(토코페롤)가 많고

배변 이뇨 다이어트 효과가 좋다고 하여

요즘 많이 찾는다

 

 

요즘 집집마다 어린이 도서가 많이 있다

그 도서를 뒤적여 보면

추사 김정희 전기가 대개 있고

불우하고 어두운 시대

권력의 핍박을 받으면서

예술의 꽃을 피운 일생이다 이렇게 추사는 소개된다

 

안동김씨와 풍양조씨는 권력을 사사로이 휘두른 세도정치의 핵으로 나쁘게 각인된다

 

풍양조씨의 핵이 조만영(순조의 아들이며 정조의 손자인 익종의 장인...익종은 추존존호이며 효명세자로 대리청정을 하다가 일찍 별세)이고

 

그 아우 조인영이 영의정을 지냈다

그런데 추사는 조인영과 아주 친하게 지냈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