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병과 치유)

백광현

guem56 2012. 10. 17. 14:24

 

태의 백광현은 가난한 집안의 자식이었다.

인조 때 태어났으며, 사람됨이 순박하고

근실하여 향리에서는 어리숙한 것이 마치 바보 같았다.

 

키가 크고 수염이 아름다웠으며 눈은 형형하게 빛났다

집안이 본디 가난하여

항상 삼베로 지은 철릭을 입고 해진 갖을 쓰고서

시장 골목 사이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남들에게 구걸을 하니, 사람들이 대부분 그를 싫어하였다.

 

아이들이 간혹 발을 걷어차면서 모욕하고 희롱하였으나,

광현은 웃으면서 화를 내지 않았다.

 

처음에는 말을 잘 치료했는데, 오로지 침만 사용하여 치료하였고

의서에 근본을 두지 않았다.

 

세월이 흐를수록 솜씨가 더욱 완숙해져서

사람의 종기에도 시술해 보았는데 종종 기이한 효험이 있어서,

마침내는 오로지 사람을 치료하는 데만 힘쓰게 되었다.

 

이 때문에 여염집을 두루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종기를 볼 수 있는 것이 매우 많아져서,

의 지식은 더욱 정밀해졌고 침술은 더욱 훌륭해졌다.

 

독성이 강하고 뿌리가 깊은 모든 종기는 옛 처방에 치료법이 없었으나,

광현은 그런 병자를 만나면

 

반드시 큰 침을 이용해서 환부를 절제하여

독을 제거하고 뿌리를 뽑아 다 죽어 가는 사람도 살려 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침을 너무 사납게 사용해서 간혹 사람을 죽게도 했지만,

효험을 보아 살아난 사람도 많아서 병자들이 날마다 그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러나 광현은 스스로 자기의 의술을 기뻐하여

병자들을 위해 더욱 힘을 쓰고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명성을 크게 떨쳤으니 그를 신의神醫라고 부르게 되었다.

 

숙종 초에 어의에 선발되어

공이 있으면 문득 품계가 더해져 숭품(종1품)에 이르렀고,

여러 직책을 두루 거쳐서 현감이 되니 항간에서는 그를 영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그는 병자를 만나면 귀천과 친소를 가리지 않고 요청이 있으면

곧 달려갔고,

가서는 반드시 마음을 다하고 능력을 다해

병자가 좋아진 것을 본 뒤에야 그만두었다.

 

늙고 귀한 신분이 되었다는 핑계로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다만

기술과 능력에 얽매인 것이 아니라 대개 그 천성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내(정래교)가 열다섯 살 때

외숙 강군이 입술에 종기가 났었는데, 백 태의를 맞이하여 보게 했더니,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치료할 수 없습니다. 이틀 전에 보지 못한 것이 유감입니다.

빨리 장사 지낼 준비를 하십시오. 오늘밤에 틀림없이 죽을 것입니다.”

 

밤이 되자 과연 그러했다.

이때 백 태의는 매우 늙었으나 신묘한 지식은 아직도 온전하여

병자가 죽을지 살지를 알 수 있어 조금도 실수가 없었다.

 

그가 왕성한 활동을 할 때,

‘어떤 집에 이르러 어떤 병을 치료했는데

신통한 효험을 보아 죽을 사람을 살려냈다’고 하는 말은 망령된 말이 아니다.

 

백 태의가 죽자

그의 아들 흥령이 아버지의 의업을 이어 조금 잘한다는 명성이 있고,

제자 중에 박순이라는 사람이 또한 종기 치료로 이름이 있다.

 

요즈음 종기를 절개하여 치료하는 방법은

백 태의로부터 시작된 것인데 후학들에게 경험방으로 전해 오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자손과 그에게 배운 여타의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그에게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심한 종기를 앓아 고치기 어려우면 반드시 탄식하며 말한다.

 

“세상에 백광현이 없으니, 아아! 죽을 뿐이다.”(정래교 완암집 )

 

 

<정래교1681~1757 :조선 후기의 시인, 중인 출신이었으나

당대 사대부들의 추앙을 받았다 저서로 완암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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