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영

정일영뎐(傳) 하나

guem56 2012. 10. 30. 16:45

여름은 무척 더웠다

 

그해 여름 시내버스비는 10원이었다

소양강 다리를 건널라치면

버스의 엔진 소리와 다리의 덜커덩 거리는 소리에

 

가방에 넣은

두 개의 도시락이 움찔하면서

몸이 흔들리면

 

다리아래로 흰모래톱에 갈대

그리고 여름 피서객들이 쉬다간 천막이

먼지를 쓴 채 시들어가고 있었다

 

소양댐이 생겨 물길이 막히고부터

백사장은 강수욕장의 기능을 잃었다

 

너나없이

강을 건너 그렇게 중학교를 다녔다

 

일주일에 한시간은 한문시간이었고

오후엔 체력장 연습을 했다

 

한문시간은 옛날이야기 시간이고

고등학교 입시에 별로 안들어가서 노는 시간이라 즐거웠으나

시도 때도 없이 체력장 연습을 하는데

 

머리도 어지럽고 고역이었다

 

시험쳐서 가고자 하는 고등학교였던지

아무튼 체력장이 끝나고

그날 저녁

육림극장에서

 

스티브 맥퀸이 나오는

빠삐용을

내 기억으로 165원을 내고 보았다

 

일주일치 이상의 왕복 시내버스요금이 통째로

문예진흥기금을 포함해서

극장 반달창구로 들어갔고

여직원은 손가락 아래 표를 내주었다

 

영화가 끝나고 다음날 부터

학교는 전쟁터였다

 

시내 고등학교를 많은 수가 합격해야

내가 다니던 소양중학교의 명예가 하늘로 솟는지라

 

수업은 날이 저물어야 끝났고

저녁을 먹은 후에 다시 강제자율학습을 하고

9시 넘어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10월은 난로가 아직 없었다

아해들은 차가운 도시락을

허구헌날 고초장에 비벼먹었다

 

밥을 먹고 나면 아랫니 윗니가 덜덜거려 부딪쳤다

 

정일영은 키가 크고

말이 없었다

 

담임이신 국어선생님은

교탁 맨 앞줄 중앙열부터

공부를 잘하는 아해 순서로 앉혔다

 

등이 너럭바위같은 정일영은

바로 내 앞에 산처럼 앉아서

하루종일 거의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칠판을 안보아서 좋았고

선생님들의 시선에 가려서 편안한 점이

눈을 가린 답답함을 보상해 주었다

 

가을은 깊어서 겨울이 되었고

밤이 되면 하얀 김을 입에서 내뿜고 손을 비비며

검은 도로 깊은 밤에

멀리서 오는 시내버스 불빛을 한없이 반가워하면서

중학교를 떠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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