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영

천마주

guem56 2013. 2. 7. 18:48

  임진년 팔월의 늦여름은 아주 더웠다

 

호남사람으로

난을 키우고

산에서 삼을 캐다가

강원도 까지 와서 살게 된

 

서선생과

정일영의 집에서

세사람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날도 무더운 여름이었다

 

일영은 기운이 떨어지다가 며칠은 좀 생생하고

눈빛의 성성함도

말할 때 나오는 기운도 높낮이를 반복했다

 

 

집안 거실에는 약초로 담근 두 개의 술병이 있었다

 

그날  나에게 무얼 가져가라 하더니

그 담근 술을 종이가방에 담아서  건넸다

 

안가져 간다 했으나

나는 이제 술을 못먹으니 가져가라했다

 

술은 어지간히 익어 있어서

갈색의 색깔에 가려 병안의 약초가 무엇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나중에 서선생에게 물어보니

신묘년(2011) 오월달에 둘이 같이 가서 캔 약초이며

천마라 했다

 

하나는 붉은 지초였다

 

일영의 집안에 담근 술이 더 있는지 모르나

대단히 아끼던 술 같던데

 

그 술을 집밖으로 가져나왔을 때

서선생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

그래서 술을 마셨다

 

일영의 집에 가서 침을 놓고 나오면

혼자 가는 날도 더러 있었는데

혼자 가던

서선생이나 박중위가 동행하건

늘 술을 마셨다

 

 

추주(鄒澍 Zou Shu)선생의 본경소증에

천마는 적전(赤箭)이라고 되어 있고

 

본문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완여전간 차유우 유풍부동 무풍자요

(宛如箭簳 且有羽 有風不動 無風自搖)

천마는 생긴 모습이 화살과 비슷하고 날개가 있다

바람이 불면 움직이지 않고 바람이 잦아들면 스스로 흔들거린다

 

날개가 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모르겠으나

천마는 마보다는 덜 끈적거리고

감자보다는 고구마와 비슷한 생김새이며

생으로 먹어보면 비위에 덜 맞는 어떤 냄새가 나기도 한다

 

천마를 갈아서 밀가루 전을 부칠 때 넣어보면

상큼한 맛은 떨어지나 건강을 생각해 보면 먹을 만하다

 

 

 

아직 20세기

흐린 기억으론

1996년 이른 봄이다

 

천마가 뇌기능 회복에 좋고

이런 저런 만병통치의 약초란 말을 어데서 듣고

 

야생은 구하기 어려워

경상도 영덕 쪽의 맹동산을 간적이 있다

 

길을 잘 몰라서

물어물어 깊은 밤중에 들어갔고

천마가루와 천마주를 구해 온적이 있다

 

눈이 유난히 많이 내린

음력으로 아직 임진년

 

우두커니

방에 놓인 천마주를 보면서

 

나는

언젠가 저 술을 먹을 것이며

누구와 잔을 나눌 것인지

오랜 앞날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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