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간엔 여전히 나무를 때서 겨울을 나는 집들이 있다
영월 문암 마을에 88세의 할아버지께서 굵은 나무를 도끼로 쪼개는
장작 패시는 모습을 텔레비젼 화면에서 보았다
그 댁에 왜정 때 시집와 60여년 가까이 사신다는 할머니도 정정하시다
가을이 깊어가면 서리가 내리고
먼산에 희끗하겐 눈발이 앉으면
유치리의 집집마다 저녁 연기가 길다
날이 추우니 불을 많이 지피기 때문이다
선녀와 나뭇군은 동화속 이야기라기 보다는
산에 나무하러 지게를 지고 가는 건 현실이었다
실한 소나무를 도끼로 패서 장작을 만들고
크기가 가지런한 장작은 단을 묶어 시동장으로 나가거나
이웃 장터 옆 동샛골
군인가족들에게 팔았다
군복을 입은 장교나 부사관들은 산에 가 나무를 못했고
그 아낙들은 나무 할 줄을 몰라 동네에서 장작을 샀던 것이다
70년대 40년전 그때 나무 한단의 이름을 한강지라 불렀던 거 갔고
나무값은 50원 60원 하더니 100원을 넘었던거 같다
가까운 산엔 땔감할 만한 나무가 없었고
장정들은 지게를 지고 이른 아침 먼산으로 가서 늦은 오후 돌아왔다
지게에는 항구가 매달렸다
군에서 반합이라 부르는 쇠밥통은 세월따라 검은 칠이 벗겨져 낡았으나 튼튼했다
밥을 가득 담고 뚜겅아래 김치와 장을 담아
유치리 젊은 아제들은 산으로 갔다
그리고 새마을 노래가 나올 무렵 그들은 산으로 더 이상 안가고
서울바람이 불어 거의 다 서울로 떠났다
총각이 떠나니 처녀들도 떠나고
유치리는 아이들과 어른들만 남았다
서울로 서울로 가면서
봄여름엔 들판에서 꼴을 베고
가을 겨울엔 나무를 하던 총각들을 다시 볼 수 없었다
'유치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문사 은행나무 <six> (0) | 2011.01.08 |
---|---|
신부님의 지프차 <cinq> (0) | 2011.01.07 |
청춘불패 유치리의 방앗간 (0) | 2010.11.06 |
무 (0) | 2010.09.27 |
햅쌀 (0) | 2010.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