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용문사 은행나무 <six>

guem56 2011. 1. 8. 12:50

유치리는 산으로 막혀 있다

앞에는 금은산 뒤에는 매화

 

어딜 보나 산이고

이른 아침부터 군인들의 달그럭 거리는 구보소리에 잠이 깨고

깊은 밤중에 개짖는 소리와

새벽 닭울음 소리가

 

언제나 판에 박은 듯 했으나

늘 새롭게 들려오는 시골 중의 시골이었다

 

긴긴 겨울 밤

반투명한 창호지 너머로

숱한 뭇별과 환한 달빛이

밤나무 가지 그림자를 드리울 새

 

할머니는 화로를 떠나 아랫목으로 내려오사

잠을 청하면서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을 외우셨다

 

녹음기처럼 늘 반복되는 화롯가 말씀이

용문사 은행나무였다

 

키 큰 사람이 타면 고개를 숙여야 하는 양덕원 가는 합승을 타거나

느르치 가두둑을 잰 걸음으로 휘몰아 상창으로 가서 버스를 타면 홍천 읍내를 가고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야

혹은 훠어이 훠어이 걸어야

할머니가 뒷마을 재숙할머니와 가시는 수타사길이었다

 

용문사 열두아람들이 은행나무는

긴긴 겨울밤 이야기거리였고

아마도 할머니는 거길 못가보셨는지도 모른다

 

서울 고모네 가는길

할머니는 양덕원을 거쳐

서울 가는 버스를 타시고

그다음엔 기차를 타시면 서울이라 했다

 

들어도 들어도 못가본 서울은

용문사 은행나무와 함께 어린 날 나에게는 전설이었다

 

세월이 숱하게 흘러

한참 곰곰이 추적해 보매

 

멀미가 있으신

시골 할머니들은 길게 타는 버스가 힘들었고

아마 차삯도 덜 들어가는 용문역 완행열차를 갈아타고

청량리로 가셔서 다시

서대문 쪽 불광동 고모네 집에 가셨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리에서 이른 아침을 해 드시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갈아타면서

해질 녘에 서울에 가셨을 것이다

 

유치리에서 차를 휭하니 가면 용문사는 한시간도 안걸린다

용문사 주차장에서 걸어들어가는 시간이 있으리라

 

내가 용문사에 서너번 들렸을 때

눈물도 마르고

수십년의 세월이 순간에 엉클어지던데....................

 

링거를 맞고

무심한 관광객의 웃음소리에 둘러쌓인

은행나무는 돌아가신 할머니 처럼

허약해 보이기도 하고

이야기를 많이 건네주는 듯도 하고

 

나무를 쳐다보는 내 몸이 햇살에 흐물흐물 녹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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