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연평도의 참담한 모습

guem56 2010. 11. 26. 12:02

인천항으로 간단한 손짐을 들고 나오는

연평 주민들의 모습을 보니 착잡하다

 

마땅히 갈 데가 없으니 찜질방을 전전하는 분들이 많은데

초중생들 공부는 어찌 하는지 답답하고

 

사회와 국가가 연평주민에게 지금 숙식을 제공하는 방법은 없는지...

 

내가 어릴 때 늘 625이야기를 듣고 살았다

 

유치리 동네 할머니들이 모이면 피난가는 이야길 늘 했다

계산해 보면 그때가 월남간 군인이 있던 시절이니

 

625휴전이 된지 10년 좀 지난 시기이고

초등학교 들어간 내가 지금도 그 피난이야기 듣던 시절이 기억난다

인민군은 따발총을 쏘고

 

넓은 외갓집을 빌려서 주둔했으며 (흉악한 눔덜이 베 알갱이를 세었다)고 들었으며

그것이 공산당의 현물세 걷어가려고 조사하는 방법이란걸 나중에 알았다

 

전쟁의 기억은 오래가고 불편한 기억이며

사람에 따라 트라우마를 형성한다

 

프랑스 프로이센 전쟁

 

이 전쟁의 독일 승리를 이끈 사람이 비스마르크이며 굴욕을 당한 사람이

나폴레옹 3세이다

 

1870년 전쟁이전에 1866년 나폴레옹3세의 함대가 강화도에 침공하여

서적과 문화재를 약탈해갔다

역사는 그렇게 동서가 무관한듯 하지만 끈이 연결된다

 

 

프랑스 군대과 전쟁에 지면서 파리에선 시민방위군도 생기고

엄청난 혼란이 온다

 

당시 모리스 바레스는 8살

전쟁의 참상을 어린 나이에 보게 된 것이 그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사람은 드레퓌스 사건에서 에밀졸라와는 다른 방향으로 드레퓌스유죄를 지지한 사람이다

 

회상형식의 (나의 공책)이란 책을 남겼는데 기회가 되면 읽어볼까 한다

 

그때 랭보는 16살이다

전쟁이 터지자 랭보는 대학입학시험 바칼로레아를 포기하고 파리로 무임승차로 갔다. 그런데 무임행위로 체포되었다

이 전쟁이 랭보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나는 잘 모르나 시적 상상력에 거름이 되었다고 추정한다

 

로트레아몽은 파리에 있을 때 스물여덟살이었다

그는 죽었다

 

전쟁으로 인해 약한 몸이 잘 못먹어서 병을 못 이기고 사망하였다

 

625때 많은 문인 예술가들도 다양한 행적을 보이고

서로 다른 고생을 하다가 죽거나 살아 남았다

 

 

총을 들어보고 섬광이 터지는 훈련장에서 전투식량을 먹다 보면

전쟁의 분위기를 약식으로 경험한다

 

군대가 강해야 하지만 전쟁은 안일어나는게 좋다

 

연평도에서 폭격에 희생된 병사와 민간인들이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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