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무바라크와 둡체크<vingt et un>

guem56 2011. 1. 31. 16:41

옛날 시동장이 살아있던 시절

유치리의 겨울은 눈으로 덮이고

더러 사람들이 산토끼를 잡았나 보다

 

내 기억으론 4학년 담임선생님의 함자는 (이 규방)이셨다

술을 좋아하시는지 얼굴 특히 코끝이 불그스름한 선생님은

지금은 세상을 떠난

 

(이 수학)생이한테

수학아 토끼 잡았냐?

 

그래서 수학이 보고 토끼 다리 술안주 하고 놀린 적이 있다

아마 수학이 부친께서 겨울에 토끼 올무를 놓으사..포획한 사실이 있을 것이다

 

시동이나 유치리엔 누가 길을 가다 100원을 주어도 소문이 좌악 퍼진다

 

이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수업내용에 집중하시지 않을 때가 있었으니

625사변 이야기를 잘 말씀하셨고

 

인민민 따발총 말씀하시면

따발총이나 기관총이 체코제야 체코

체코 총은 한참 쏴두 열이 안올라 오래쏴

성능이 기가 맥혀...

 

유치리 생판 시골촌놈들 4학년 수업시간에

동유럽 중공업의 발달지 체코의 무기 기술수준을 말쌈하셨으니

 

다른건 기억이 안나고

체코는 빨갱이 나라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들고...

 

그런데 그 시절...

68년 프라하의 봄이었고

유치리 나무상자

누런 스피커 통에는

체코와 두부체크라는 단어가 늘 나왔다

 

그때는 내가 3학년시절이었다

돌아보매

시골학교는 보강이 많았다

3학년 담임 박남심 선생님은 나이 많으시고 병이 잦으사

아마 이규방선생님이 보강으로 들어오셔 체코 기관총 이야길 하셨는지도 모른다

 

나는 두부는 알아도

사람이름이 두부체크일수가 있는가 하여

두부먹는 사람인지...그게 헷갈렸었다

다만 두부체크가 불쌍하다는 느낌을 아나운서 목소리로 알았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 카프카란 이름을 알았고

프라하는 여전히 동토의 땅이었으나

어느날 연속극에 프라하의 아름다운 광장이 나오기도 하고

주변에 주머니 두둑한 사람들은 소리없이 가족끼리 동유럽여행을 숱하게 다녀오기도 하였다

 

거리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개혁을 외치면 언제나 힘을 가진 사람들 편에서는 질서수호를 외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되는 대로 지맘대로 사는 영혼이 썩은 부르조아들이

이기적인 목적에서 데모를 한다고 값을 깍아내리기도 한다

 

68년 프라하에는 소련 탱크가 힘차게 굴러 들어갔다

 

나일강이 흐르는 이집트

사람들 바글거리는 카이로에

탱크들이 점점이 늘어서고

마치 러시아 옐친시대처럼 사람들이 탱크에 올라가 있으니

무바라크 유혈로 거리를 덮을지

30년 권좌에서 내려올지 누가 알까만은............

 

 

내가 열서너살 무렵 이렇게 들었다

이스라엘 사람은 전쟁이 나면 급히 고국으로 귀환하고

아랍학생들은 외국에 눌러 붙는다고...

 

시민의 질이 달라

아랍 특히 이집트는 백날 희망이 없다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큰 나라의 간섭과

이집트 자체의 오래된 부패재생산의 틀이 튼튼해서 그렇지

어떤 나라 사람이 뱃속에서 날 때부터 흐리멍덩한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땅이 이집트라고 안되는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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