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춘천에서 원주 가는 버스가 지나는 홍천읍
성당앞 도로위에
길건너 개천이 흐르고 거긴
군부대 납품하는 장공장이 있어서
가을이 깊어가면 메주콩 삶는 냄새가 하늘로 뭉게 솟았는데
길가엔 이발소 두 곳이 나란히 있었다
어느 집인지
벽에 물레방아 도는 서양식 페인트 그림에
한국 시골 마을 그림이 있고
수초가 우거지고 족보가 불분명한 새 두어마리가 하늘로 날아갈 새
그 여백에 시한수가 있으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푸시킨의 시였다
내가 그 이발소에 다니던 때는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겨울이었다
가슴을 쓸어안으며 훌륭한 대통령이 계셔서 미리 도발을 막으셨다니
그 깊은 지혜에 감탄하던 6학년 겨울이었다
서울 성북구 터널을 빠져 내려가면 경복궁이고 그 뒤 산자락에
길상사가 있다
이 태백의 자야가를 당시에서 본 지 아주 오래 뒤에
그 땅을 시주한 사람이
백석이 별호를 자야로 건네준 자야란 여인이었고
백석과 북녘 함흥에서
추억을 만들었던 사람이란걸 알았다
언젠가
검은 인민복을 입은 백석이 1990년대 까지도 여든을 넘겨 북한에서 살고 있었다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며칠 전 신문에서
백석이 해방후 그리고 625후
북한에 살면서
푸시킨의 시를 100편 넘게 번역하였으며
그 번역문이 실린 책자가 나온 기사을 보았다
장삼이사로 하루를 벌어 이틀을 살아가는 나지만
인연이 묘하다
내가 요즘 러시아어 철자를 보고 있는데
아마 팔자가 푸시킨 시도 읽어보고
원시보다 공력이 빠지지 않은 조선어판 백석의 시도 읽어 보라는거 같다
세월은 흐르는데 할일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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