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제비의 추억<trente-quatre>

guem56 2011. 2. 26. 14:28

내가 살던 매산학교 옆자리

할아버지가 지으셨다는 집에는

뒤란에 살구나무가 있었다

 

키가 큰 살구나무는 봄이 오면 화사한 꽃을 피우고

흐드러진 꽃잎이 봄바람에 어지러이 날렸다

살구나무의 기세에 눌려선지 그 옆의 앵두나무는 열매도 시원치 않고

키가 자라지 못했다

 

아마 집과 가까웠고 살구의 그늘아래 눌려 해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해 그런듯 하다

나는 삶의 길을 바꿔

나무를 키우고 살아볼까 한 적이 있다

땅이 있고

시간이 있어서 두고 두고 농사를 지을 수 있다면

이젠 빛 바랜 이발소 그림처럼 희미해져가는 N분의 1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살구나무 자리한 부엌 뒷문을 나와 마당으로 오면 대청마루 처마에

제비가 오면 그게 봄이요 어느덧 여름이다

제비는 매해 찾어왔다

 

습관이 되어 나는 으레 제비는 사람 사는 집 마루위에 둥지를 트는 줄 알았고

제비똥은 아침 저녁으로 나무 마루바닥이며

마른 진흙 봉당위로 떨어졌다

 

제비똥을 치울 때 할머니 뿐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도

얼굴을 찡그리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제비는 길조였고 상서로운 새였다

유치리 어느 집이나 그랬다

 

심술있는 아이들이 제비집을 행여 지게 작대기라도 잡아서 건드리노라면

지나가는 동네 어른 목에서 기차 화통같은 호령이 떨어져 나왔다

 

홍콩이나 중국에선 제비집 요리를 먹는다

서울의 큰 호텔 중국식당에서도 제비요리를 내놓는다

제비요리는 제비의 타액이 굳은 것을 녹여서 만든다

고급요리로 수요가 증가하여 값은 점점 뛴다

 

인도네시아가 전세계 70% 정도의 물량을 공급하며 총제비집 거래약은

20억 달러를 웃돈다

말레이시아도 제비집을 생산한다

바다에서 자연생산되는 것은 물량이 달린지 오래

 

양연(養燕)사업이 성황중이다 종사인구만도 수만명이고

참치나 새우양식처럼 기업화 된지 오래이다

 

나는 제비집 요리를 먹어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먹을 생각이 없다

 

시골에서 어릴 때 본 제비집은 하루 아침에 되는게 아니다

그 작은 입으로 제비는 쉴 새 없이 날아 들면서 공들여 집을 짓는다

 

제비집 요리는 바닷가 절벽에 집을 짓는 금사연(金絲燕)의 집만을 쓴다고 한다

부지런히 꽃들을 옮겨 다니며 얻어온 꿀을 벌이 앗기듯이 금사연은 어느날 집이 헐린다

 

그나저나 말레이시아도 주변국과 제조업 경쟁에서 밀리고 경제사정이 좋지 않다보니

양연사업을 적극적으로 범국가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중국 홍콩 대만의 부자들이 제비집요리라면 냉큼 지갑을 열기에 공급로는 별 걱정이 없으니

양어장처럼 숱한 제비들이 양연장에서 살아갈 것이다

 

멀리 동남아에서 수륙 수만리를 날아

내 어릴 적 유치리 집으로 날아온 제비들

요즘도 고향에 제비가 날아드는지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