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낙동강 칠백리<Cinquante)

guem56 2011. 5. 19. 11:52

낙동강

병산서원 모래밭에 앉아 있거나

회룡포 물줄기 구멍뚫인 쇠다리 위에 서면

시간을 잊는다

 

흐르는 듯 멈춘 듯 그 유장한 물의 흐름앞에서

짧은 인간의 하루 더 짧은 머무는 시간 서너시간

그 작은 시간에 앞 천년 뒤 천년이 다 머릿속에 맴돈다

 

낙동강 칠백리

조명희란 사람이 있었다

 

나라가 일본에 망하는 걸 보고

글을 쓰다가 소련으로 망명했다

 

그가 1927년에 이 땅에 남기고 산 소설이 <낙동강>이다

 

스탈린이 연해주 하바로프스크 등지의 한국 사람들을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옮길 무렵 그는 별 다른 이유없이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억울한 죽음이다

 

그의 가족이 타슈겐트에 가서 살아서

타슈겐트 나보이 박물관 안에 그의 기념관이 있다

흉상과 함께 한을 품고 죽어간 그의 영혼이 머물고 있다

 

나는 80년대 중반

지금 기억이 잘 안난다

 

조명희의 낙동강이 수록된 출판사와 연대가 불확실한 조명희 소설집 아마 해방전이나 후에

그러니까 625전에 나온 그의 소설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 책은 어디로 갔는지 지금 없다

 

내가 죽음을 생각하고 살아가면서 원망을 생각하면

뜬금없이 그 조명희 선생의 삶과 그의 소설이 적혀있던

그 글씨 인쇄체가 조잡하고 종이질이 안좋았던 그 소설책이 생각난다

 

흑해

크림반도

나이팅게일과 톨스토이가 적국의 간호사와 장교로 함께 있었던 그곳

 

1941년 나찌가 들어오고 44년 소련군이 다시 들어온다

44년 5월 18일 소련군은 그곳에 살던 대대로 고향처럼 살던 크림지역 타타르 족의

모든 집 문을 두드리고 가족들을 강제로 역시 중앙아시아로 보낸다

 

20만이 떠났으며 반은 추위와 배가 고파 굶어죽었다고 한다

한국인과 같은 운명이었고 같은 애매한 이유였다

 

고르바초프가 89년에 이들의 귀향을 허용했다

역시 중앙아시아 한인들도 다시 동쪽 연해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오늘날도 낙동강은 흐른다

그런데 모래톱과 풀이 자라는 습지가 많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