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신종플루의 추억 세 개의 전장(戰場) <Cinquante et un>

guem56 2011. 5. 19. 16:57

 세 개의 전선(Three Fronts)

 

2년전 신종플루가 한창 기세를 떨치던 시월달 그리고 동짓달..

어른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학생들 노인들 백신을 맞던 때

 

학교엔 결석생이 넘치고 뉴스엔 사망자 소식과

집단 고열증세가 어디서 터졌다고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흘러

불안감이 하늘로 뭉게 뭉게 솟아오르던 그 해 늦은 가을

 

나는 준이와 청이 둘 다 걱정이 되었다

이 애들은 백신도 안맞히고 감기가 걸려도 병원엔 안간다

내가 치료한다....

누가 세워 주지도 않은 알량한 원칙 하나...

이것만이 대비책이었다

 

그러나 전선(戰線)은 둘이 아니다

더 다급한 사항은 집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병에 안걸리는 거였다

할아버지와 준이는 같이 방을 쓴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여러분이 모이는 복지회관에 날마다 가시고

여길 가시지 말라 할 수 없다...

 

매일 과일을 더 놓고 미세한 기침소리가 혹시 있으신가?

미열이 뜨는가?

계속 안보는 듯이 살펴야 했다

 

할아버지께선 다행이 아무 이상이 없었다

 

병이란 안심하는 순간에 온다

관우가 안심하는 사이에 오나라 병졸이 다가왔다

 

경계가 소홀해지면

병은 매우 빠르게 히틀러 전차부대처럼 마지노 선으로 다가온다

 

다음주 큰 애 준이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준이 청이 다니는

각각의 장애복지시설에서 휴원하기를 바랬으나

그러질 않았다

 

아이들을 집에 둘 수 없어 계속 보냈다

준이의 기침은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리고 준이 다니는 시설에서 감기 내지 신종플루가 발생한듯

준이 기침이 심해지자 그 시설은 임시로 문을 닫았다

내가 그 시설의 늦은 조치를 원망할 틈은 없었다

 

준이에게 침을 놓았다

엄마란 자식이 아프면 근심이 배를 더한다

엄마는 병원에 보내는게 어떠냐고 이틀을 말했다

나는 그럴수 없다고 했다

 

병이 커지며 좋지않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병원은 안갔다

 

폐경에 침을 놓고

인후부 대응자리와

방광경을 놓았다

 

깊은 기침소리가 좀 사그러 든듯 했다

준이는 잘 먹었으며 며칠 그렇게 가면서 기침도 잦아 들었다

 

금요일 이웃 아파트에 사는 아는 분(내고향에서 같이 살아서 동생같은 사람) 딸이 고2인데 감기가 심하니 침을 놓을 수 있느냐 밤중에 전화가 왔다

영숙이는 감기같지만 신종플루기가 있었다 침을 놓고 왔다

 

준이는 자고 있었다

내가 마음이 편해졌다

병은 의원이 안심하는 순간을 노린다

 

토요일 아침부터

작은 애 청이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밥을 늘 잘먹는 애가 아침을 반도 안먹더니

오전에 이미 눈동자가 충혈되고 점심때 고열이 떴다

 

내가 점심시간에 집에 들어가서

청이에게 침을 놓았다

제대로 병이 온듯하다

 

드디어

척후 매복병 다 아니고

적의 선봉도 아니고

중군 주력부대 수십만이 물밀듯이 이미 쳐들어 온듯하다

 

밤에 다시 침을 놓았다

열은 39를 넘어 40도로 향했고

아이는 입가에 침을 살살 흘렸으며 물은 간간히 마셨다

 

침을 놓고 나니 열이 꺾였고

눈동자가 붉은 핏줄의 붉은 색이 좀 줄어들고

호흡소리가 거칠었던 것이 숨이 고르는 듯 했다

 

아이 엄마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밤이 깊었고 잠이 들었으며

아침에 예전에 해 논 무슨 약속이 있었는지

아이 엄마와 준이는 아침 일찍 집을 떠났다 오후 늦게 온다

 

그때 무슨 일로 집을 비웠는지 기억은 없다

 

일요일 오전

나는 할아버지는 방에 계시라 하고

한가로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원래 청이는 일요일을 안다

일요일은 늦잠을 자고 아침을 적게 먹는다

병은 나간 줄 알았다...물러간 줄 알았다

 

10시쯤 되어 청이를 보았다

눈동자가 붉은 게 아니라 아예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입에서 침이 흐르는 듯 했으며 온 몸이 불덩어리 였다

병은 의원이 안심하고 성이 굳건하다고 느낄 때 성문을 부수고 들어온다

 

의원은 당황하면 안된다

병은 기싸움이다

기에서 밀리면 병을 이기기 힘들다

 

그럴때 너무 의지를 보여도 안된다

병을 이긴다고 힘을 보이면 병은 노기를 띤다

 

적과 싸울때는 모름지기 적의 분노를 사서는 곤란하다

적의 방심을 사야 한다 그래서 경적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도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다

 

침을 놓았다

침이 살갗에서 튀어나온다는 느낌이다

 

침은 힘을 써서 억지로 누르면 별로다

자연스레 들어가지 않을 때 구지 놓을 필요 없다

열이 무척 높아서 온도를 재는 의미가 없다

엄마가 없으니 아이를 달래기도 힘들다

 

물도 안마신다

열을 떨구어야 한다

 

청이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감자와 귤이다

마침 오렌지가 있었다

 

즙이 많은 달은 듯 신맛도 나는 

캘리포니아 오렌지

 

그걸 저며서 누운애 입에 가져갔더니 그건 잘 먹는다...

이제 나는 웃음이 없고 안도감도 없고

포커 페이스 내 얼굴은 병을 치는 염라국 사자의 얼굴이다

 

생명줄을 늘리는 환혼(還魂)의 검객

 

오렌지를 하나 다 먹었을 즈음

침을 시작했다

 

차세연진 삼계일색 내세부연(此世緣盡 三界一色 來世復緣?)

이 세상에서 이 아이와 나의 부자 인연이 이제 다하는가?

전세 현세 내세 삼계가 한가지라 들었은데

내세에 혹 다시 인연이 있겠는가?

 

나는 짧은 순간 깊은 상념을 하며

내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손을 따라 침을 놓았다

 

열은 계속 되었다

약을 쓴다....

 

내가 약을 가지러 가려면 차가 없으니

급하게 가서 왕복이 30분이고

약을 골라 넣는데 3분 집에 와서

센불에 달이는데 20분

한시간이다

 

한시간에 약물을 달여 입에 넣는다

약장에 가서약을 담았다

 

약낭에 저울로 잴 수 없어서 그냥 손으로 움켜 넣었다

갈근 황금 죽엽 산약 길경 금은화 상백피 한줌씩 집어서 집에 왔고

달였다

 

펄펄 끓는 약물을 큰 그릇 찬물에 이중으로 넣어 식혀서 약을 먹이고

다시 오렌지를 먹였다

 

텔레비전에서는 전국 노래자랑

송해선생이 사회를 보고 계셨다

나는 텔레비전을 역시 보았다

침과 약을 쓰고 난후 병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시간이 흐를 뿐이다

 

아이 엄마가 저녁 어스름과 함께 돌아왔다

청이는 저녁을 어느 정도 먹었다

 

나는 그 해 겨울이 가고 새해 설이 지날 무렵

그때 애가 열이 높았었다고

웃으면서 말한 적이 있으나

그 당시의 심각성은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세 개의 전선.....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병이란 지진과 같아서 여진이 있다

다시 준이가 고열이 떴다

 

이번엔 별로 나도 싸우고 싶지 않았다

청이 열보다 약했고

준이는 이미 저번 주에 많이 아팠었다

 

사흘 지나 준이 청이 다 나았으며 그 다음주 문을 연

복지원으로 아이들은 아침에 떠났다

 

전쟁이란 싸워본 사람은 그 당시 아슬아슬했던

순간을 잊기가 어렵다

 

다시 싸우고도 싶으나 사실 평화가 좋다

 

어느 봄날 매화산인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