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추사고택 가는 길<Cinquante-duex>

guem56 2011. 5. 20. 16:02

추사고택 가는길

 

어느 해 더운 여름이 오기 전

나는 예산에 갔다

 

거기 추사선생 고택이 있다

침 일찍 가서 경기도 땅을 지나 국도로 접어들어

널찍하고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기와집과 기념관

추사선생 생가에 갔다

 

추사의 증조모 화순옹주

남편 김한신이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따라 세상을 떴다는

전설같은 실화 화순옹주

그 합장묘

 

그리고 추사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그때가 아마 2006년인지 2007년인지...

추사선생의 이름을 들은지 이미 오래된 세월

내 어릴적 집에 <한국의 인간상>이란

신구문화사 1965년 판의 다섯권 전집에

전해종교수의 글로 추사에 대한 소개 글이 있었다

 

추사가 중국에 가서 중국의 대학자들의 존경을 받았고

세한도를 그렸으며 고금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예술가다 그런 내용이었다

 

어린 내가 한자를 잘 몰라 소화하기 어려운 글이었으나

추사가 대단한 사람이란 건 알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 세한도가 실려 있었고

세한연후 송백지후조란 말을 기억하게 되었다

 

예산 추사 고택을 찾았을 때는 이미 내가 추사 선생의 흔적이나 유허지를 다시는 안본다

마음속으로 여러번 생각한 뒤였다

 

이 풍진 세상

돈과 명예를 떠나 살아서 어떤 즐거움도 바라지 않겠나니

 

묵의 향과 서책의 글을 이제 떠나나이다

신새벽 일어나 침침한 눈을 비벼 책속의 묵은 세월을 걸어가는 그 일을 접나이다

 

생각해보면 재주가 모자라고

책읽기 보다는 술 마시기가 편하며

무엇보다 끈기가 없고 일희일비

아침에 발끈하고 저녁에 방정맞게 웃나니

 

인간의 크기가 책읽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먹을 갈아

난을 그리기에는 격이 떨어지나이다

 

아직 목숨줄이 길게 남아 살아생전 지상을 떠날 때

선생의 유택에 한번 못 들린게 한이 될까 하여 이리 왔나이다

 

추사고택에서 먼 하늘을 보다가 기념품점에서 세한도 그려넣은 큰 접시를 하나 사고

추사글씨 만수무강이 새겨진 문진을 둘 사서 오후에 거기를 빠져나와 낙조

 

해가 지는 간월암을 바라보다가 서해 고속도로를 타고

밤늦게 백타산으로 돌아왔다

 

그 때 가져온 문진 하나는

어느날 놀러온 박춘풍이 집어가고 책상엔 만수무강 문진 하나가 남아있다

내가 추사에 놀란 적은 20세기가 저물어 갈 무렵이다

 

추사체...이 글씨가 보편적 기준에선 무엇을 말하는가?

 

혼불

글을 쓰다 몸을 살라 죽어간 작가는

최명희는

 

혼불에서

중국의 서예가 등석여와 포세신의 스승 제자 맺은 일화를 전한다

 

내가 등석여의 백씨초당기를 집에 일본 이현사 판본으로 어디선가 업어다 놓은 것이 30년이 넘었다

 

나는 혼불의 내용을 보면서도 내가 등석여의 글씨를 가져다 놓은 걸 몰랐다

등잔밑은 늘 어둡다...

 

백씨초당기는 예서였다

나는 30년전 포세신의 예주쌍즙에 관한 이야길 들었다

 

붓을 끌고가면 안된다

붓은 세워가야 하고

먹을 아무리 머금어도 화선지에 흘리면 안되며

붓은 한손으로 바로 잡아야 하고

 

붓잡은 손은 자가 없어도 화선지에 바둑판을 그려야 한다

술을 마셔 손이 떨려도 붓을 잡으면 사람이 달라져야

 

천지조화의 기운을 담고 용이 하늘로 솟으며 학이 날아가는 그윽한 모습이

먹으로 종이에 옮겨진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무리 봐도 어린 나이에

추사의 글씨는 이게 아닌듯 하였다

 

어느날 인가 내가 어디선가 책을 읽었다

추적을 잘하는 일본인이 쓴 책이었다

등석여가 죽자 그 아들이 조선에 편지를 보내 김노경에게 아버지의 묘비명을 부탁하는 글이 있다는 거

그리고 김노경에게서 그 부탁이 어떤 사연으로 성사가 안되자

 

김노경 아들 김정희에게 다시 부친의 묘비명을 부탁했다는거

실제 그 묘비명이 작문이 되었는지 그건 모른다

 

당대 제일의 예인 등석여

그런데 그 아들이 천하의 숱한 재사를 다 물리고

압록강을 건너는 편지에 김노경 김정희 부자의 글을 구했다는거

 

그 사실을 접하고

나는 짐을 벗었다

 

세상엔 먹을 갈아야 할 사람이 있고

시문을 지어 달빛에 읊어야 할 사람이 따로 있으며

 

허구헌날 술을 벗하며 생활하다가

서넛 존속의 쌀과 옷을 마련하고...

세상에 누를 가급적이면 덜 끼치고 살다가 죽어야 할 인간이 역시 따로 있다

인인각생...人人各生

 

비감함이 없는건 아니나 그렇게 또 세월이 흘러갔다......

 

늘 코미디 프로에 나온다

소는 누가 키우냐고....

 

가끔 봄날 창을 내다보면 내가 혹 지금 소 키우고 싶은 생각을 하는건

아닌가 이렇게 펄쩍 놀라곤 한다

 

어느 봄날....80세를 바라보는 추사 스승 옹방강 선생이 쓴 반야심경

그 힘찬 획을 바라보면서

 

매화산인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