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혜강의 양생론을 읽으며<Cinquante-quartre>

guem56 2011. 5. 21. 13:01

 

감숙성 란조우에서 섬서(Shaanxi)성 시안으로 오는 사이에

보계(寶鷄 Baoji)라는 인구 370만의 큰 도시가 있다

 

보계근처에 위수(渭水)가 흐른다....

 

보계에서 1백여리 좀 더 가면 오장원 벌판이 있다

 

만고충신 제갈량이 출사표를 던지고 조조를 벌하러

중원을 회복하러 오다가 사마중달을 만나 싸운 곳

 

 

오장원의 별

제갈공명은 여기서 이승을 떠난다

 

삼국지를 덮어야 할 때가 있다

관우가 죽었을 때

그리고 공명이 죽었을 때......

 

 

세월이 흐르고 위나라 등애와 종회가 촉을 멸하러 들어간다

 

종회가 촉나라명장 강유의 군대에 막혔을 때 등애는 천인절벽을 건너

(이 대목은 대처라는 여자가 영국수상을 할 때 아르헨과 포클랜드에서 전쟁을 했다

그때 영국군 그린베레가 행군한 방법과 유사하다)

 

 

촉의 모자라는 임금 유선의 항복을 받는다

 

 

물 먹은 종회는 나라가 망해 할 수 없이 항복한 강유와 편을 먹고

나중에 등애를 처형한다

 

 

종회가 득세할 당시...위나라의 권력은

사마중달의 아들 사마소에게 집중되었다

 

 

그때 선비들이 있었다

산수지간 탄금부시 앙천장소(山水之間 彈琴賦詩 仰天長嘯 窮道之哭)

<산수에 노닐며 거문고를 타고 시를 지으며

때로 하늘 보고 퉁소를 분다 길이 막히면 가다가 운다>

 

세인들을 그들을 일러 죽림칠현이라 했다

그 중에 한사람

 

 

혜강...풍채가 선인이고

절조와 학문이 사람을 압도했으며 따르는 제자 수천이었다

 

 

인간이 덜 된 종회가 찾아왔으나 뭔가 뒤틀려

종회의앙심을 샀고

권력자 사마소 또한 혜강을 안좋게 보았다

 

 

코에 걸면 코걸이

어느 시대나 반역과 역모 그리고

불충의 죄명이 있다

 

혜강은 죽었다

광릉산을 타며 죽었다 한다

 

 

세월이 흘렀다  900년이 흘렀다

 

 

송나라 문약한 나라였는지

당시 임금이 나라를 잘못 다스렸는지

휘종과 그 아들 흠종이 여진족에 잡혀가고

북송은 망해서 남으로 쫓겨갔다

 

 

지금의 항저우(杭州)근처 임안에 자리잡고

휘종의 아들 조구가 남송을 열었다

 

 

피는 속이질 못하는가?

마음이 심약한 조구 휘종의 아홉 번째 아들인데

아버지를 닮아 서화에 능하고 나라 존망지절인데 묵향에 깊이 빠졌다

 

 

그가 남긴 글씨가 낙신부(洛神賦)이다

낙신부....설명하면 길다

 

사연도 슬프고

 

조조의 아들 조식이 관련된 애틋한 전설같은 사랑이야기이다

 

 

송나라 고종 조구는

그 낙신부 옆에 또 하나의 글씨를 남겼으니

그 글이 혜강의 양생론이다

 

 

세혹유위신선 가이학득...(世或有神仙 可以學得....세상에 신선이 있다고 하는데 그 신선이 되는거 배울수가....)이렇게 양생론은 시작된다

 

 

혜강은 마흔살을 못채우고 형장의 이슬로 갔다

 

900년이 지나 양쯔강 물줄기로 흘러가는 첸탕(錢塘)강가 항저우에서

송나라 고종이 그의 양생론을 썼고

 

다시 900년이 지나

조선사람인 내가

그의 양생론을 읽는다

 

 

나는 혹 내가 지은 글이 있으면

1800년 후에 누군가 어디서 읽기를 희망한다

 

 

이 세상에 바래는 나의 희망사항이다

 

그뿐 별을 보다 오늘 죽어도

별로 여한은 없다

 

 

어느 봄날

생각이 일어  매화산인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