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로트레아몽을 알게 된 봄...<Quarante-huit>

guem56 2011. 5. 7. 09:34

길이 끝나면 여행이 시작된다

 

저 멀리 주막이 보이면 다시 갈래길이 나오고

그때 별을 보고 밤에 떠나든 하루 쉬고 다음날 아침에 신발을 고쳐 매든

여행은 또 시작된다...

 

 

 

청춘

스무살 누구나 다 지나가는 시간이다

 

 

내 청춘의 시간표는 최류탄 가스 분출량 증가와 비슷하다

 

 

머리가 똑똑한 사람들은 데모를 하고

몸이 아름다운 사람들은 연애를 하던 때

 

나는 이도저도 아니라

중앙시장 촛불집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가다 아저씨들이 모이는 그 선술집에서

 

막걸리 잔술을 마시며 봄 여름.... 그리고 다시 이듬해 봄이 왔다

 

 

그때 막걸리는 밀가루로 만들어 농도가 짙고 취기도 어지간했다

쌀막걸리가 좋다하나 나는 그 퀴퀴한 밀가루 막걸리가 그립다

 

한 잔에 백원이었다 안주는 김치를 그냥 주고...

 

 

가끔 돈이 있으면 두부김치 같은거 안주로 얹어 먹었으나

대개 잔술을 서너잔 하면서 얼근해지면 시장을 한바퀴 돌다가

다시 그집에 들려 또 마시고 밤이 깊으면 자러 가는 세월이었다.

 

 

그때 마르크 블로크를 만났다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편한 마음으로 보다가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을 만났다

 

 

이 책이 나를 불편한게 아니라 블로크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 그걸 알게 되고부터 나는 왜 사나? 뭐하고 사나? 이런 문제로 병을 앓았다

 

 

마르크 블로크는 역사가이며 나찌의 프랑스 점령당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독일군에게 처형된 인물이다

 

 

그런데 그때 처형될 때 나이가 58세 환갑 바로 전이다

 

 

먼 나라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찌 죽은들 무슨 상관이냐 마는

 

내 아는 사람들이 최류탄 가스를 마시는 와중에

대가 약해 거리로 못나가니 숨은 골목에서 막걸리 마시며 살아가는 중인데

 

그렇다고 고시 공부할 만큼 엉덩이가 질기지도 못하고

몇 년후 취직을 생각해 어떤 준비를 할 만큼 부지런하지도 못하고

여인이 다가올 만큼 매력이 있는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 사람은 60이 다된 나이에 이리 치열하게 살다가

적의 총알에 죽었구나...

 

생각하니 내가 한없이 작아지고 살길이 그냥 막막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그 밀가루 막걸리를 마시며 낮에는 정신을 마취하고 밤에는 술만 마신 배가 고파 밥을 한끼 양껏 먹고 잠드는 날이 계속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도서관에서 쓸데없이 책을 뒤지다 시 한편을 읽게 되었다.

 

 

 

 

 

 

 

시의 제목과 내용은 아래와 같다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

 

1.

그 겨울 내 슬픈 꿈은 18세기 외투를 걸치고 몇닙 은전과 함께 외출 하였다.

목로의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랑하지 않는 여인의 흰 살결,타오르는 쾌감을 황혼까지 생각하였다. 때로 희미한 등불을 마주 않아 남몰래 쓴 시를 태워버리고, 아 그 겨울

내 슬픈 꿈이 방황하던 거리 우울한 샹송이 정의하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그 숱한 만남과

이 작은 사랑의 불꽃을 나는 가슴에 안고 걷고 있었다.

 

2.

밤 열시 시계의 태엽을 감으며 그녀의 살 속으로 한없이 하강하는 헝가리안 랩소디

따스한 체온과 투명한 달빛이 적시는 밤 열시의 고독

머리맡에 펼쳐진 십이 사도의 눈꺼풀에 주기도문이 잠시 머물다 간다.

 

3.

날개를 준비할 것 삶. 혹은 우리의 좌절에 관한 대명사.

솟아오름으로 가라 않는 변증법적 사랑의 이중성

 

4.

가로등이 부풀어오른다.흐느적 거리는 밤공기 사이로, 킬킬대는 불빛의 리듬.

인내는 선술집 앞에 서성이고 바람은 취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걸어 나온다.

쉬잇 설레 이는 잠의 음계를 밟고 내가 바다에 이르렀을 때, 보았다.

아득히 밀려오는 파도와 살 섞으며 한 잎 두 잎 지워지는 뱃고동소리

조용히 모래톱에 속삭이는 잔물결을 깨우며 한 여인이 꽃을 낳는 것을.

 

5.

물결 치는 시간의 베일을 헤치고 신선한 과일처럼 다디단 그대 입술은 그대 향기로운 육체는 깊은 혼수로부터 꿈을 길어 오른다.

 

날아오르라 날아오르라 박수를 치며

젖은 불꽃의 옷을 벗어라 나의 하아프여

 

가만히 촛불을 켜고 기다리자 누군가 휘파람을 불며 지중해의 녹색 문을 열고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피어나는 연꽃 속에 빛나는 보석을 찾아.

 

6.

자정이 되면 샤갈과 함께 방문하는 러시아의 설해림

모닥불 옆에 앉아 우리는 수평선 너머 사라지는 선박의 긴 항해를 바라보았다.

눈이 내리는군요 밤안개가 걷히겠지요.

바람 부는 해안 푸른 고요 속에 목마른 자 홀로 남아 기도하는 자정의 해안,

그 어둠 속에 눈은 내리고 내리고

유년의 마을 어디쯤 떠오르는 북두칠성 지상의 불빛이 고개를 숙인다

 

7.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81년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이며 이 작가가

유명한 소설가 신경숙의 남편이라고 인터넷엔 적혀 있다

 

아무튼 나는 저 시를 읽고 나서 실제 로트레아몽이 따로 있음을 알았고

그가 프랑스 말로 시를 쓰고 우루구아이 출신이며 24세의 나이에

일찍 죽었음을 확인했다

 

 

나는 <말도로르의 노래>라는 로트레아몽의 시집을 샀다

 

세월이 흐르면서 시집이 어디로 가면 바로 또 사고

언제나 내 앉은 자리 근처에 놓고 살았다

 

본명 이지도르 뤼시엥 뒤카스

 

한국에서 발 아래로 굴을 파면 바로 아래 나온다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나 몬테비데오

 

그가 내 바로 발밑 또는 머리 위에서 태어나 파리로 건너갔다

 

말도로르의 노래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찾아서, 상상력으로 꾸며내거나 혹은 그들이 소유할 가능성이 있는 영혼의 고귀한 품성을 이용하여 글쓰는 사람들이 있다

나, 나는 잔인함의 환희를 그리는 데 나의 천재를 사용한다!....

 

 

무슨 말인지 알듯 모를 듯 한데 그는 유명한 평론가들에게

정신이상이 확실한 상태에서 이런 글을 썼다고 진단을 받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로트레아몽의 시인지 산문인지 글을 전혀 이해도 못하면서 열심히 읽고 또 읽었다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을 지은 대문호다

 

 

1866년 조선 강화도에서 조선왕조 의궤를 약탈해간 불한당 같은 나폴레옹 3세가 비스마르크 철혈군대에게 깨지면서 파리에는 왕정이 종식된다

 

 

자유주의 사상 때문에 강제 망명생활을 하던 위고가 조국의 품으로

금의 환향할 무렵

 

로트레아몽은 전쟁의 포성이 여전히 울리고

생필품이 떨어진 고립된 파리 시가 어느 유숙처에서 병사했다

 

 

그는 말도로르 노래 6편을 남겼고

내가 읽은 것은 제 1편이다

 

 

나는 나머지 편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있는지 지금 모른다

 

 

다만, 열심히 반야심경 외우는 슈퍼 할머니처럼

말도로르의 노래를 늘 펴보고 살았다

 

역시 그 할머니처럼 정확히 뜻도 모르면서

 

 

내가 이제 여행을 떠난다면

말도로르의 노래 나머지 5편을 마저 읽을 것이고

 

 

그리고 나도 <장삼이사의 노래 >라도 한 편 남겨

100년 세월이 지난 어느날

 

먼 남미 우르구아이의 어떤 사람이 떠듬떠듬 한글을 배워

내 노래를 읽기를 바란다

 

 

나는 늘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바램을 가지고 살았지만

웬지 이 일은 잘될거 같다

 

어차피 1백년후에 살아남을 사람도 드무니,

미리 결과를 알수도 없고 약간 답답한 정도이나

 

 

 

그러나 나는 예감이 좋다..

그리 될 게다

 

어느 봄날 매화산인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