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고사리<soixante-sept>

guem56 2011. 6. 3. 14:07

고사리

 

충신이 한사람 있었다

성삼문......

내 어릴 적 69년이라 기억한다

시마을(詩洞) 매화학교를 나오면 두세시

아래 시동 장터에서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신 아저씨가

어린이 신문을 배달했다

 

그 신문은 아마 소년한국일보 였던거 같다

사방에 산이요 논 밭이라

보이는 나무와 풀 그리고 파란 하늘

글자가 없었고 책이 귀하던 시골

그 어린이 신문을 보는게 참 즐거웠다

 

이원복선생의 축구 만화가 실렸었다

그 만화를 통해 브라질 산토스 팀의 전설을 알았고

이화택선수로 만화에 나온 사람이 나중에 이회택선수임을 알았다

 

그 신문에 성삼문 선생의 일화가 실렸었다

중국 사신을 맞은 성삼문이 백지 병풍에 먹을 확 뿌려놓고

시를 지어 글씨를 썼는데 그 흐트려진 먹이 다 글씨에 가려졌다는 꾸민 이야기 같은 내용이었다

그때는 성삼문이 단종임금을 위해 죽은 충신이란걸 잘 몰랐다

 

내가 읍내에 나가 중학교를 다닐 적에

근처 여고생들이 읍내 극장을 빌려 학교축제를 하고 거기서 단종복위 연극을 했다

 

그냥 웃으면서 보다가

나중에 성삼문이 끌려나오고 불인두로 지지는데

돼지 비계인지 실제로 타는 살냄새가 무대에서 나오면서

주변에 관객들이 많이 울었었다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

주려 주글진들 채미(採薇)도 하난 것가

비록애 푸새엣거신들 긔 뉘 따헤 낫다니.

 

저기 채미가 고사리라 하였다

세월이 흘렀다

 

내가 남도 울돌목 건너 운림산방을 찾았을 때

근처 어느 박물관에서 하위지 선생의 자그마한 편지글을 본적이 있다

그걸보고 성삼문 선생을 생각했으며 고사리가 떠올랐다

그 편지를 집어오고 싶었다

 

저 시조를 배우고 나서 그런지 고사리를 잘 안먹었다

 

인제 원통을 지나면 내설악으로 들어간다

내가 커서 도시에서 학교를 다닐 때 어머니께선 거기 사셨다

 

녹음이 우거진 날에 어머니는 늘 산에 가셨고

두릅과 고사리 그리고 도토리를 가져오셨다

두릅이 철이 짧아 나올 적에 맞춰 가야 했으나

고사리 도토리는 저장성이 있어서 늘 고사리를 먹었다

 

워낙 고사리가 많아 두고 두고 도시 집으로 가져와 많이 먹었다

 

어머니께서 매봉산 자락 서면에 사실 때 역시 주변에 산이 많았다

 

그때도 고사리는 사시사철 집에 늘 있었다

 

나는 산에 늘 가시는 어머니의 노역이 저어되어 고사리를 덜 먹었다

 

여러 자녀 살다보니 고사리는 서울로도 가고 강릉으로도 갔으나

내 사는 집에는 고사리를 가져오지 않았다

 

나는 고사리를 안먹는다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서면 집에 가면 늘 고사리가 반찬으로 나왔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담백한 맛을 좋아한다

 

기름을 살짝 뿌리고 깨가 드문 섞인 고사리 나물은

먹다 보면 그 맛이 추억이 되고

찰진 도토리 묵이 곁에 있으면서 물김치가 짝을 맞추면

경복궁 수랏간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렇게 오래 세월을 늘 고사리를 먹으면서 지냈다

 

인생이란 삶의 신산이 있다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셨고

서면 집엔 젖은 고사리는 철이 아니라 없었으나 말린 고사리가

웬만큼 남았다

그 고사리를 형제들이 나눠 갔다

 

나는 내집으로 그 고사리를 들이지 않았다

어머니 가신지 삼년이 지난 어느날

 

내가 서울 누나 집에 들렸을 때

말린 고사리를 물에 불려 기름 두르고

내가 먹던 그 고사리가 나왔다

 

늘 술에 쩔어 살아 나는 감각이 많이 무뎌졌으나

그 고사리가 어머니가 만드신 고사리 맛임을 알았다

 

누나는 어머니 솜씨를 9할을 닮았다

내가 누나 집에 가서 밥을 먹으면서

가슴이 아픈 이유는

입이 즐거워도 내 어머니 음식맛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누나가 말했다

이게 매봉산에서 나온 고사리

어머니가 만든거

조금 더 남아 있지만 거의 마지막이다....

 

내가 거기서 그 고사릴 안먹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먹었다

 

냉장고를 열어 매형이 마시던 술 두병을 다 비웠다

 

누나가 그 남은 고사릴 덜어줄테니 가져가라 했으나 그냥 왔다

 

지금은 그 고사릴 가져 오지 못한 걸 가끔 뉘우친다

가져와서 오래 오래

푸얼차처럼 내가 이 지상을 떠날 때까지 곁에 놓을걸 그렇게 아쉽다

 

어머니가 가신 날 밤

내가 영정을 뫼시고 새벽에

시를 하나 썼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산나물 이름이 들어간 시를 적었는데

하도 청승맞아

어느 책갈피에 넣어 버려 지금 없다

 

10년 세월이 지나 내 눈에 다시 보이면 그 시가 살아날 테고

어느 짐에 묶여 날라가면 그만이다

 

노무현봉하촌장께서 돌아가신 날

내가

한문으로 제문을 지었다

그 제문을 역시 책갈피에 옮겨 적어 놓았는데 그 책이 없다

 

늘 찾는데

그게 또한 아쉽다.....

 

오늘 지리산에서 고사리 나물이 왔다

내가 이 고사리 나물을 먹을 수도 없고

안먹을 수도 없다

 

불가식 불가류(不可食 不可留)

 

성삼문 선생의 벗이 강희안이다

고사 관수도를 그린 예인이다

 

강희안 선생이 양화소록(養花小錄)을 남겼다

을유문고판의 그 작은 책을 나는 30년째 가지고 다닌다

 

어머니 사시던 서면 집에 양화소록대로

수목을  펼쳐놓고 화훼를 가꾸어

매화를 그리려 했다

 

내가 형제들간에 발언권이 약해서 집은 팔렸다

 

세월은 가고 나는 두릅나무를 심어 새순을 한 번 따려 했었다

 

그 집에는 어머니가 산에서 가져온 작은 두릅나무가 있어

어느해 봄에 새순을 따서 초장에 찍어 먹은 적이 있다

 

비빔밥집에 가면 나오는 고사리

늘 젓가락으로 비켜 가던 그 고사리를 오늘 만났다

 

산에서 나온 산 냄새가 물씬 나는 고사리

내 어머니가 설악에서 따오신 그 고사리를 닮았다

 

불각루하(不覺淚下)

 

고사리를 보내 주신 분에게 緣의 業을

무겁게 感하면서

 

어느 여름의 길목에서 매화산인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