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홍천읍내 아서원<Soixante-six>

guem56 2011. 6. 2. 18:02

양평 두물머리를 지나

강물과 모를 낸 벼가 푸른 논을 지나다 보면 용문을 거쳐 양덕원 지나

홍천이다

 

구성포를 거쳐온 물줄기와 공작산 수타사 물이 합수하여

화양강..... 물고기가 질펀한 그 강물을 보며 나는 홍천읍에서 두 해를 살았다

 

강에는 물고기가 많았고

어른들은 생활에 바쁘고 아이들은 고기 잡는 어항이나

족대가 귀해서....물고기는 풍성했다

 

그때가 1971년 가을이다

홍천읍내 초등학교를 졸업하느라 아이들은 사진관에서 앨범사진을 찍었다

오케(OK)사진관

 

더운 여름에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관에는 선풍기가 돌아갔다

선풍기에 얼굴을 디밀며

그게 내 생애 처음으로 선풍기 바람을 맞는 순간이었다

 

사진관 옆이라 기억되는데 아서원(雅敍園)이란 중국음식점이 있었다

낯선 냄새나 묘하게 사람을 끌어 당기는 짜장내가 골목으로 퍼져 나오는 아서원에

나는 그때는 들어가 볼 수 없었다

다만 아서원 정문 유리안으로 들여다 보이는 풍경을 늘 구경했다

 

거긴 박정희 대통령사진과 수염이 달린 머리가 스님같은 할아버지가 사진으로 나란히 있었다

그 사진속 인물이 장개석이었다

 

나는 누군지 모르는 그 할아버지가 존경하는 대통령과 나란히 있어서

늘 궁금했으나 물어볼 데는 없었다

 

71년 그 해 가을 겨울은 시국이 뒤숭숭했다

1923년에 독일에서 태어난 이스라엘계 사람 헨리 키신저

아직도 살아서 이런 저런 의견을 내놓는 키신저가 베이징으로 날아가 저우 언라이를 만나

중미수교를 꾀하고

자유중국과의 공식관계를 끊어버리는 그런 시절이었다

 

<월남의 하늘아래 메아리치는 귀신잡는 그 기백

....청룡은 간다> 청룡부대 군가를 부르며 개울에서 멱을 감으며

아카시아 꽃잎이 피고 지던 때

 

비록 아직 중학생도 아니었지만 11살 짜리 우리들도 분노했다

 

의리를 저버리는 미국과 그래도 자유중국의 영원한 혈맹 대한민국은

나의 자랑스런 조국이었다

 

그래서 그 아서원의 장개석과 박정희 사진은 뭔가 모를 흥분감을 주었다

 

30년 세월이 꿈같이 흘렀다

오년 전쯤 어느 가을이었다

그 다음해도 그랬고 아서원에 이제 머리에 희끗한 색이 있는

그때 초등학교 벗들이 모여

죽엽주와 우량액을 마셨다

 

칭다오에 사는 심현(沈賢)이 붉은 실을 제대로 두른 마오타이를 가져와서 역시 마셨다

서너번 아서원에 갔었다

 

아서원은 수십년을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그 장개석 사진이 사라진 그 집에서 실내가 거의 변하지 않은 그집에서

팔보채와 유산슬 그리고 이름모를 잡채를 먹었다

 

음식의 미감은 서울이나 춘천보다 한수 위였다

여러 가지 음식이 시간을 적당히 맞추어서 나왔다

느끼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짜거나 싱겁지 않았다

 

숙수의 솜씨가 세월을 담고 있었고

비록 작은 읍내에 있었으나 맛은 한없이 깊었다

 

작년 가을 그 때 그 자리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홍석(洪夕)이 다리를 다쳐 침을 맞으러 왔다

 

운전하기 불편한 환자는 다른 사람 차를 타고 왔다

수인사가 오고 갔는데 홍석보다 나이가 위이신 분이었다

 

바로 이분이 아서원 사장님이자 음식을 수십년 대를 이어 만드신 분이었다

가족은 태평양 건너 이젠 박찬호가 떠난 엘에이로 건너간지 강산이 변했고

사장님은 남아 아서원을 계속 열어놓았다가

 

근자 엘에이를 오고 가며 두 곳 살림이 힘들어 곧 아서원은 폐(閉)한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만나자 이별이고

술기운 돌자 술동이가 빈다더니

순간 한없이 아쉽고 서운했다

 

올봄 홍천 읍내

내가 졸업한 그 초등학교 앞을 지나 아서원자리로 가보았다

 

건물은 그대로 간판은 그대로

다만 문이 잠겨있었다

 

한때 소시장이 서고

장이 열리는 날이면

순대국 끓는 냄새와 부침개 기름 튀는 소리가 왁자하던

읍내 시장터도 다니는 이보다 상인이 많은듯 적막하고

어디나 다 소읍은 이렇다

 

버스가 연신 드나들던 대합실은

숱한 자가용에 눌려 자리를 한참 비켜난후 역시 적막한 읍내....

 

그리하여 아서원도 덩달아 시들었으리라

 

이제 나 역시 가리라

백타산 자락 물맑고 송림이 우거진 내 땅으로 가서

얼기설기 통나무 얽어 마루를 놓고

달과 별을 보며 밤에 술을 마시리라....

 

청산교목울울창천(靑山喬木鬱鬱蒼天)

장강녹수파파만리(長江綠水波波萬里)

이화성효이수양주(以火成肴以水釀酒)

고붕만좌여월부시(高朋滿座與月賦詩)

송객문전유연재래(送客門前有緣再來)

 

청산엔 나무가 많고

장강엔 물이 즐펀히 흐르니

땔감으로 안주를 만들고

맑은 물로 술을 빚으리라

벗들이 왁자지껄 모여 달을 보고 시를 읊을진대

손이 떠나면 멀리 안나가니

연이 닿으면 다시 오시라.........

 

낭만은 죽었고

세금고지서와 은행빚만 쌓이는 낯선 나라

 

여름의 길목에서 매화산인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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