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외가집<Soixante-huit>

guem56 2011. 6. 3. 18:27

높은터

매화학교 오른 편 뒤를 돌아

보리 밭을 지나고

 

서너집을 돌아가면

가파른 언덕이 나오고

폭포는 아니로되 물줄기가 시원한 내가 떨어진다

 

어른 키만한 그 물줄기 돌계단을 오르면 평지가 나타나고

커다란 집이 보인다

 

시마을에서 가장 큰 집이다

고색창연하다

 

그 집에 들어가려면 한참을 더 돌아가야 한다

우물이라 하기엔 저절로 생겨서 샘이다

 

사시사철 찬 물이 솟아나고 그 물엔 어떤 벌레도 없다

나의 외가

 

거기서 물을 길러 또아리에 이고

외승모는 부엌으로 물을 날랐다

외갓집에 가면 반드시 그 샘물을 먹어야 했다

 

올라오느라 힘이 들었고

그 물에 손을 담그면 한여름에도 냉기가 돌았다

청량함이었다

 

샘물 열걸음 곁에 아람드리 나무가 있어서

그 나무를 고개 들어 쳐다보면

나무 한자락이 속이 비어있고

거기다 한 때 술한동이를 얹어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대문을 들어가면 오래 된 나무 냄새가 진동을 한다

625사변전에 쌓았놓았다는 소나무 장작은 마치 성벽의 벽돌처럼 정갈하게 대문 양옆에

수타사 사천왕상 처럼 위엄이 있었고 세월을 자랑했다

 

막내 외삼촌은 다른 건 다 건드려도 그 장작에 손을 대면 소리를 지르셨다

완벽한 형태가 천년이 가도록 놔두려는 심사였는지 모른다

 

나는 그 장작개비를 한 번 꼭 빼보고 싶었으나 어린 나의 손힘으로는 꿈쩍을 안했다

 

장작더미 안쪽엔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큰 가마솥이 두 개 걸려있었고

저녁 어스름엔 쇠죽을 끓이느라 가마 솥에선 김이 피어올랐다

 

다른 가마 하나는 마치 수십년 후

나의 약탕기처럼 늘 식어 있었다

하늘은 작은 예후를 미리 마련해 놓는다

 

가마솥의 불기운은 외할아버지 방으로 들어갔다

너른 집

 

방이 스무칸은 되었다

장작더미 지나 가마솥에 붙은 방은 세 개였고

그 첫방이 19세기에 태어나신 아흔살이 넘으셨다는 외할아버지 사랑이었다

 

마당에 들어서면

건너 대청마루 안방의 창호가 열리면서

큰 외삼촌께서 밖을 내다보셨다

 

멀리 외가의 개인지 다른 집 개인지 짓는 소리로 사람 오는 걸 아신듯하다

(솔이 왔느냐?)

언제 가도 단 그 한마디

 

어린 내가 멀리서 고개를 숙이면

그집 외아들 우영이가 어디서 튀어나와

할아버지 방으로 다시 내 걸음을 되돌렸다

 

우영이는 나보다 두 살이 어린데

늘 외할아버지방에 꼭 나를 데리고 갔다

 

살다보니 늘 하찮은 신분인 나는 외할아버지를 평생 단 한번도 독대를 못했다

하여 우영이 놈을 늘 패고 싶었으나

워낙 귀하게 키워놔서 손을 써보지 못했다

 

외가에 올라갈 때 어머니는 반드시 나를 불렀다

두 말씀을 늘 건넸다

 

외할아버지 방에 가면 절을 해야 한다

우영이는 어떤 일이 있어도 울게 하면 안된다

 

외할아버지께선 귀가 잘 안들리시고

눈도 흐리신듯 하다

내가 절을 하면

우영이가 촉새같이 끼어들었다

 

저 아래 너른내...솔이가 왔어요..

 

아하 솔이냐? 외할아버지는 그 말씀 한마디 하시고

나를 물끄러미 보셨다

 

침묵이 흐르고 나면 우영이가 손짓을 해서 나를 데리고 나갔다

 

외갓집 대청은 넓디 넓었으나 늘 반드르 했다

 

봉당에 신발을 올리고 올라서면

방방이 열리며 외사촌 누이들이 튀어 나왔다

 

6남 1녀였다 제일 큰 누이는 나보다 스무살은 많은 듯 해서

이미 서울로 간 뒤였다

 

대청에 걸린 큰 누이의 사진은 영화배우 같았다

밤이 기울고 달빛이 외가의 돌담에 스밀때 외가를 둘러 흐르는

환상(環狀)의 시내에선 물소리가 우람했다

 

그 때 어른들이 주섬주섬 검은 두루마기 흰두르마기를 입고 대청이 늘어섰고

병풍 앞에는 제상이 마련되었다

 

희고 누런 팥가루를 묻힌 널찍한 바둑판 모양의 떡이 켜켜로 쌓이고

송화내가 물씬 풍기는 노란 다식

검은 깨의 다식이 진설되었다

 

유장한 목소리로 우리 외가 우영이 오촌 당숙께서 유세차 제문을 소리냈고

밤하늘에 낭랑하게 하늘을 타고 올랐다

 

쉽게 끝나지 않는 제사는 길고 길었다

 

어느 해 나는 앞줄에 있었는데 어느 어른이 저 애는 뒤로 물리라

외가 피붙이는 나하나라....나는 우영이 한참 뒷줄에 서서 절을 했다

 

그게 포한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제사가 끝나면 음식을 먹는게 기다려 지는게 아니라 워낙 서있고 절을 많이 해서 자야 했다

병약한 나는 그랬다

 

어느 누이가 손에 쥐어주는 다식과 떡 한조각을 베어 물어 넘기기도 전에 나는 안방 한켠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 어머니께서 나를 데리러 오시기도 했다

 

왜간장은 안쓴다

조청을 쓴다

외가는 철저히 19세기 였다

 

설탕과 샘표간장 그리고 미원을 안쓰는 외가의 음식은 우선 매웠다

 

어머니는 내가 어제 밤에 뭘 못먹었을 것이고

아침도 잘 안먹을거 같으니 일찍 오셔서 나를 데리고 가신 것이다

늘 그랬다

 

얼굴이 희고 병약한 내가 어머니 손에 끌려 너른 마당을 지나갈 때

이집의 사령관이신 큰 외삼촌은 늘 또 한마디를 등뒤에 남기셨다

솔이 잘 데리고 가라.....

 

어느 해 봄날이라고 전해진다

 

큰 외삼촌께서 아침 안개속에 새벽

지게에 큰 자루를 지고 오셨다

쿵소리가 나며 우리 할아버지가 마당에 나가셨다

<이게 뭐요?>

(하이구 다른게 아니라 솔이가 하도 뼈가 단단해 보이질 않고 애가 안크는거 같애서

지가 저 근네 높은터에 심궈논 찹쌀을 가져왔네여...)

 

할아버지께선 말을 대답을 잊으셨고 두고 두고 그 찰진 찹쌀 이야길 하셨다

 

큰 외삼촌은 나를 그리 귀여워 하셨다

71년 봄 그해 할아버지가 나를 공부시킨다고

 

도회로 갑자기 이사를 떠나셨다

 

외할아버지

그리고 외삼촌을 뵈러 갔다

그때 외삼촌이 내 머리를 평생 단 한번 쓰다듬어 주셨다

 

<공부를 하러 나가면 크게 해서 이재학 만큼 해야 한다>

 

이재학은 자유당 시절 이승만의 책사였고 벼슬도 높았던

이 고장의 출세 정치인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이미 퇴역하신 분이었다

 

그렇게 외가를 떠나고

외삼촌을 떠났다

 

외가는 넓어서 625사변때는 인민군 주둔본부였다

대가 강하신 외할아버지는 다른 식구는 다 집을 비우고 아래 동네 다른 집으로 임시 거처를 옮기셨는데

사랑방을 그대로 쓰셨다 한다

 

세월이 흐르고

나는 외가에 해를 건너뛰며 들렸는데

그 많던 설흔 사람은 된 듯 했던 식구들이 하나 하나 흩어지고

 

작은 외삼촌도 살림을 나가고

누이들도 서울로 다른 도시로 다 흩어졌다

나중엔 큰 외삼촌도 도시로 나오셨다

 

내가 높은터

나의 증조할아버지 금초를 20년을 다녔다

 

그때마다 멀리 길을 돌아 외갓집을 지나 갔으나

내 동생이 저쪽 20리 밖의 반대쪽으로 차를 대면 쉬이 가기 때문에

성묫길을 바꾸게 되어 그걸 말리지 못했다

 

언제 가나 그 고색창연한 장작은 그대로 였으나

어느 해 외가 앞의 밭이 군대 사격장이 되었다

그 후 외가는 사람이 살지 않아 점점 처마가 내려앉았다

 

어느해 나혼자 거길 꼭 가보고 싶어 갔을 때

 

내 가슴에 피멍이 들었다

샘이 말라 물이 죽은 것이다

사람이 푸지 않으면 물은 저절로 끊긴다

 

나의 외가는 그 후 10년을 더 버티다 어느날 사라졌다

 

내 마음엔 그러나 그집은 아직도 옛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나와 동갑인 사촌누이가 우연이다

같이 매화학교를 다녔으나

시골엔 사촌도 내외를 하니 말을 학교선 건네 본적이 없다

내가 외가에 가도 그 애는 늘 다른 방에 있었고

함께 음식도 잘 겸상을 못했다

 

눈망울이 큰 우연이는 참 예뻤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자주 보았으나 늘 눈에 띨듯 말듯한 미소가 있었을 뿐

말이 없었다

 

내가 우연이를 생각하는건

그 때 고등학교 때 보고 그게 끝이었다

 

삶의 신산

내가 이거저거 한답시고 세상을 한창 돌아다닐 때

우연이도 어딘가 많이 떠돌았다

 

 

그리고 소식이 왔다

미국 산호세로 이민 갔다는........

 

어린 날 쇠죽을 끓이는 불빛에서

그리고 밤이 깊은 날 제상앞에 여자아이는 못 나오니 저쪽 어느 방에서 고즈넉이 앉아 있던

우연이는 내 평생 말 열마디를 몬건네본

나의 누이였고

이젠 살아서 이승에서 보기 힘들다

 

그 위에 누이 우숙이 누이가 우연이 연락처를 알고 있다

내가 만약 혹시 재물운이 들어 돈이 오면 나는 산호세를 갈 거 같다

가서 그 애의 얼굴이 변했는지

아니면 그 애 목소리가 어떤지 살펴보고 싶다

 

외가가 사라진 날 나는 일주일을 밥을 못먹었다

 

돌담 위로 늘어진 밤의 밤나무 그 긴 그림자

삭풍이 불어 나뭇잎이 산들거리는 소리

작은 외삼촌이 고구마와 밤을 구워

우영이는 더 주고 나는 밤한개와 고구마만 많이 주시던 그 겨울밤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아무리 세월이 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