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두부 그리고 회남자<soixante-treize>

guem56 2011. 6. 11. 13:02

시골집은 가마솥에 밥을 한다

소나무 장작이 한참 타들어가면 가마솥 뚜껑이 하늘로 살짝 솟으며 김을 내면

쌀익는 냄새가 난다

 

가마솥에 밥을 푸면 누룽지가 솥주인처럼 앉아 있다

추석이 오거나 설이 오기 열흘 전 쯤

 

부엌이 새벽부터 바쁜 날

졸린 눈을 비비고 부엌을 보노라면

밥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김이 워낙 피어올라

부엌안이 안개속이다

 

비릿한 콩내음이 풍기고

할머니는 뜨끈한 열기가 손이 델거 같은 삼베 자루를

두손으로 나무 함지 안에서 억누르시고

그래서 두부가 만들어진다

 

어린 아이는 단것을 좋아하고 담백한 맛을 모른다

 

나도 시마을(詩洞)에 살 때는 두부를 왜 먹는지 몰랐다

동해바닷가에 사는 고모가 오신 다음 날 아침에 두부를 만들었다

 

고모는 처음 만든 두부 초두부라 하던가

그 뜨끈뜨끈하면서도 한없이 부드러운 두부를 좋아하신 듯 하다

 

스무살 무렵 나는 예전에 내가 눈으로 보고

입으로 들어가면 내키지 않아서 먹던 그 두부 맛을

시간차가 난 다음에 그리워 하기 시작했다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십년이 지났다

 

설악산 아래 어머니가 사시던 집

어느해 가을 그 동네에 머물 때 파란 물을 건너 보이는 집에서 내일 두부를 하는 날이라 했다

어머니는 그 다음날 아침 일찍 그 집에 가셔서 초두부를 한껏 가져오셨다

 

하루 종일 그 두부를 먹었으나 물리지 않았다

고소한 맛은 먹은 뒤에도 오래 남았다

 

봄내에 살 때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섰으나

과수원과 논이 질펀한 만천리 얕은 고개를 넘어

아주머니 한 분이 두부를 저녁 무렵 골목에서 파셨다

 

늦게 나가면 그 두부는 다 팔렸고 어느날은 일찍 나가도 사람들이 금방 동을 냈다

 

느랏재 고개를 넘어 구성포 가는 길가 어딘가에 두붓집이 있다

리유가 어느날 그집에 갔다가 순두부를 비닐에 담아 왔다

그 다음날 차거운 걸 먹었는데도 고소함이 살아있다

 

내가 그집엘 언젠가는 갈거 같다

 

 

회남자

후아이난(淮南)왕으로 봉해진 유안이 그를 따르는 문인들과 만들었다는 책

포박자보단 정밀하고 장자보단 더 현실세계를 다루면서

문기(文氣)가 흐르고 문격(文格)이 높은 책

 

예전에 타이완에서 나온 회남자를 빌려 보았는데

주인에게 돌려드리고 나선

잘 안읽는다

 

내가 회남자를 구했으나 본문에 각주가 작은 글씨로 달라붙어

눈이 피로하다

 

춘하추동의 질서와

우주와 천하의 이치를 밝히면서

불우한 사람이

암울을 견디고 산수지락을 알게 하는 이 책은 나는 즐겨 읽었었다

 

회남시는 인구가 6백만이다

회수는 황하와 양자강 사이를 흘러 훙쩌후(洪澤湖)로 흘러든다

 

회수 양안은 비옥한 농토이다

그 땅에서 질좋은 콩이 나오고 그 콩으로 두부를 만든다

 

화이난의 두부는 써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모두부도 있지만 증편떡처럼 편편하게 크게 썰어놓기도 하고

개피떡처럼 빚어 내기도 한다

 

회남왕 유안이 그 어머니께서 연로해서 딱딱한 음식을 드시기 어려워 두부를 만들었다고 하고

두부는 회남이 원조라고 회남 사람들은 두부 축제를 열기도 한다

 

중국 사람들은 송나라때 두부제조법이 고려에 전해졌다고 하는데

고구려나 백제 사람들은 두부를 먹었는지 안먹었는지 알아보기 어렵다

 

회남자는 여씨춘추나 백호통이나 논형보다 나는 그 가치를 더 치고

황정경 남화경 그리고 관자 한비자 회남자를 사람들이 읽었으면 한다

 

<그런데 회남자는 또한 한없이 슬픈 책이다

회남자를 직접 유안이 지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연단술과 신선을 흠모하는 도가적 분위기에 수많은 방사와 책사들이 모여들었고

학자들고 구름같이 회남으로

유안의 곁으로 왔다고 한다

 

유안의 아버지는 반역죄로 이복형인 한문제에게 걸려 촉으로 귀양가는 도중 자결했다

유안도 나중에 모반죄로 몰려 죽었다

 

생사이치를 깨쳐 영원 불사를 추구하던 그가 역모로 죽었다는 것은 실제 그가 역모를 했는지

의심을 받아 사지로 몰렸는지 알기 어렵다

 

가의(賈誼)는 바른 소리를 잘하나 그의 글은 황실에 대해서는 충정이요

한신이나 기타 한나라 초대 공신들중 곱게 못죽은 사람들은 다 역천(逆天)으로 비판받았다

문제가 조카되는 유안을 회남왕에 봉한 것은 잘못이라고 했고

유안은 결국 모반했다는데....가의가 앞을 제대로 본것인지 다 안개 같은 음모인지 알 수 없다

 

이제 생각이 남은 것은 그렇게 내용이 유장한 회남자를 만들고도

자신은 비명에 갔으니

이를 생각하면 회남자가 슬픈 책이란 뜻이다>

 

뭐든지 바꿔 보는것도 좋지 않겠는가?

왜 조선이 아니고 국호가 대한민국인데

한자로 된 책을 보시는 분들은 늘 소학 대학 맹자로 가는지

구석기 시대부터 그렇게 읽으라고 조문이 있는지 나는 궁금하다

 

주희가 손을 본 시경은 시경이 아니고

주희가 건드린 사서(四書)는 사서가 아니며

무엇보다 사서 그 자체가 재미가 없다

내 생각이 그렇다

 

도경이 싫으면 법화경같은 불경을 읽으면서 한자문화로 들어가면 덧나는가?

 

오늘날 지리산 청학동에서 예닐곱살 아이들을 모아다가 천자문을 외우게 하는 걸 보면

강남에서 영어 배우느라 몰려가는 아이들이 도로 저 아이들이 아닌가 한다

 

열린 사회는 이 땅에 오려면 아직 멀은가 보다

우리는 60만 대군이 단 하루 같은 시간에 영원한 대국 미국말 듣기를 하고

미적분 풀기를 하는

거대한 수능의 나라 그 나라에서

단일화 획일화의 바다에 헤엄치는 물고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