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모비딕 황정민<Quatre-vingts>

guem56 2011. 6. 20. 16:22

시골엔 먹을게 없다 하지만

읽을 것도 없다

 

지구를 반 바퀴 걸어서 돈다는 영원히 걷는 부대

11사단이 홍천에 있다

 

세월이 변해 요즘은 기계화 부대가 되어 걷지 않는다니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다

 

유치리 내집은 늘 새벽 한밤중 이른 저녁

저벅 저벅 군인아저씨들의 걷는 소리가 들렸다

밤도 없이 추운 겨울 더운 여름없이 그들은 걷고 또 걸었다

 

동샛골 지거치 느르치 산과 강 오솔길 사람의 발이 닿은 곳이면 늘 걸었다

그래서 이 나라가 이렇게 사는지도 모른다

 

군인가족의 자녀들이 매화학교에 많이 다녔다

그애들은 대개 해가 바뀌면 떠나갔다

직업군인인 아버지가 전근이 되신 것이다

 

아이들은 농사짓는 집보다 부유했다

하여 책을 가지고 잡지를 가지고 왔다

그 애들이 책을 보다가 노는 시간에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창너머 짜장을 먹는 아저씨들을 쳐다보듯이 그렇게 만화를 보았다

소년중앙인지 새소년인지 그런 잡지로 기억한다

 

얼굴이며 몸에 온통 문신을 한 무서운 인디언 작살잡이와

호기심 많은 소년이 고래를 잡는 이야기

흰고래...거기 나오는 외발의 에이허브 선장은 말이 없었고

위엄이 철철 넘쳤다

 

나는 흰고래<백경 Mobydick>을 그렇게 만났다

아이들은 책을 다달이 가져오지 않았다

 

늘 에이허브 선장이 고래를 마침내 잡는지 그게 궁금했다

 

거대한 포경선 위에서 숱한 고래를 잡아 기름을 엄청 짜내던데

나는 에이허브와 이스마엘이 항구로 돌아가기를 바랬다

 

어린 마음에도 누군가 죽을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만화는 그렇게 중간에 짤린 채 세월이 갔고

나는 강산이 변한 세월에 어느 토요일 명화극장 흑백판에서 에이허브 선장이 죽어가는 모습으로 종결이 되는 영화를 본듯하다

 

내가 허먼 멜빌의 생애를 알게 된것은 한참 뒤이다

 

서울 종로를 걷다가 영문판 (Billy Budd)를 샀다

그게 해양선상 반란소설이라는데 작은 문고본이라 글씨가 작고

살때는 한가했는데 사고 나보니 바빠서 못읽었고

차일피일 지금 그 작은 책은 어디 서가에 있을 텐데 다시 보기는 어렵다

 

신묘년 날 더운 일요일

나는 안하던 짓을 했다

어쩌다 보는 영화

 

사람이 많이 봤다는 이너넷 정보가 없으면 언젠부턴가 영화를 잘 안본다

재미없을까 걱정되어서다

 

그런데 황정민을 믿어보자 그리고 제목 <모비딕>이 나를 끌었다

모비딕은 투탑영화관에서 하루 세 번 상영했고 가보니 예매자가 거의 없었다

꽝이다

 

간만에 보는 영화 졸다가 중간에 튀어나올거 같았는데

객석안에는 열사람 정도 앉아 있었다

 

영화는 발암교라는 다리가 폭파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나중엔 황정민과 다른 배우들이 김상호를 제외하곤 다 살아나는 결말이었고

황정민은 뜻을 이루는

무조건 불의에 의해 짓밟히지 않는 그림을 보여주었다

 

윤전기 돌아가는 시끄러운 신문사 인쇄실에서 그는 마이크로 신문 스톱을 외쳤다

 

요즘은 신문이 스피드 있는 정보싸움에서 완전히 밀렸지만

 

20세기엔 그러지 않았다

한 때 나는 작은 봄내의 어느 신문사 윤전실에 매일 드나들다시피 했다

신문은 인쇄기에 걸려 돌아가는 순간에도 기사를 바꿀 수 있으면 바꿔야 하고

오자가 나오면 맞춤법을 바로 잡아야 한다

 

예전에 윤전실은 납냄새가 풍겼다 수동으로

사람의 손으로 납을 글자로 만들어 썼기 때문이다 적어도 80년대 까지는 그랬다

 

황정민과 후배 여기자 김민희는 신문기자가 사는 법을 보여주었다

일본말 사시말이

사건 현장의 냄새를 맡으러 밤새 경찰서 파출소를 기자가 돌아다니는 걸 말한다

 

기자는 밥 먹을 시간

잠잘 시간

술마시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이 동시에 존재한다

 

손컴퓨터 시대에 이제 기자의 존재는 의미가 달라졌다

기사의 초점이 스피드에서 사후분석 내지는 미래전망으로 바뀌었다

 

마감시간에 맞춰 정신없이 검은 볼펜을 굴리다가

급하면 공중전화로 기사를 불러대던 흑백의 시대는 갔다

기사를 보내고 나서 집으로 못가고

중앙시장 선술집이나 지나는 길목 충청상회에 들려

쉰내가 은은한 밀가루 막걸리라도 걸쳐야 밤이 가고 아침이 오는 그런 시절은 갔다

 

기자란 손으론 원고를 쓰고 입으론 늘 술을 마신다

술을 안마시고는 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황정민은 연기를 잘한다

부당거래에서 경찰이 여기선 기자로 바뀌었다

담배를 잘 태운다

 

모든 애로사항이 담배연기에 녹아서 그런대로 견딜만하게 살수 있게 만드나 보다

혹은 영화속 음모론처럼 전매청의 지원을 받는지 누가 알겠는가

 

둔한 듯 빠르고 겁이 많은 듯 한데 용감한 기자

그러나 예정된 교통사고로 죽은 김상호는 황정민과 영화속에서 동갑이며 현실에서도 동갑이다

 

나는 영화 한편 간만에 마음에 들게 보았다

영화제목을 모비딕이라 한거나

그걸 초장에 해설하면서

(흰고래가 그렇게 큰 줄은 모르고 덤볐다)는 소설속의 일구절은

음미할 만하다

 

우리는 먹고 살면서 사는게 힘들어

흰고래를 생각조차 않으려 하며

할 수 있다면

될 수 있다면

 

그런 모디딕은 피하면 좋고

나타나면 절대 안잡고

 

개그콘서트와 나는 가수다에 취해

그냥 하루와 올해 그리고 남은 기간

한 세대를 가늘고 길게

그리고 이왕이면 돈 좀 쓰면서 그렇게 살고 싶어한다

 

우리는 새우나 꽁치가 되어 버렸다

이미 흰고래가 있는 영역과 너무 멀기에

안전한 철망안에 존재하면서 우유를 일정량 만들어 내면 주인의 보살핌을 받는

순치된 소...

 

최영미의 표현을 빌려오면 돼지의 본질을

몸과 마음에 이미 잘 입력하고 있다..

 

나는 이 영화를 만든 박인제 감독과

여러 연기자 들에게서 한국영화의 수준을 보며 그 발전가능성이 큼을 예감한다

어쩌면 관객보다 영화가 더 앞서나감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