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활 박해일<Cent vingt-six>

guem56 2011. 8. 16. 13:48

영화란 이야기를 듣는 자리와 여러 내용이 비슷하다

 

이야기의 내용이 사실을 많이 닮았든

허구가 많든 간에

화자가 누구이든 간에

이야기 하는 동안에

청자의 집중성이 높아야 한다

 

듣는이의 혼을 쏘옥 빼놓는 이야기가 되려면

말하는 이의 능력이 중요하고

배경도 중요하다

 

으스스한 달밤에도 사람을 웃길 수 있어야 하고

밝은 대낮 더운 해변가에서도

듣는 이를 오싹하게 할만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을 수도 있다

듣는 사람을 최면에 빠뜨리는거

 

그게 바로 영화 보는 사람들을 아무 생각없이 영화속에 몰입하게 하여

관객의 두시간을 그 사람의 시간 연속선상에서 불연속으로 만드는거

그게 명화를 가름하는 기준자가 될 수 있다

 

내 경우 아바타를 보거나 캐러비안의 해적을 보면 영화속에 빠진다

관객에 따라 조니뎁 영화는 몰입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만화영화 같다 하여 안보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이분들의 생각을 인정한다

그리고 내 영화보는 염색체가 다름을 또한 그러려니 여겨 달라 말한다

 

더운 여름날 황금의 휴일이라던데 나는

박해일의 활을 보면서

히로이토가 충량한 황국신민에게 더 이상 싸우지 않겠노라 방송한 그날을 보냈다

 

지리산 화엄사

그 입구에 가면 청량한 녹음 사이로 맑은 바람이 불고

절 입구 불이문엔

지이산화엄사(智異山華嚴寺)란 큰 글씨가 있고 그 옆에

병자년 숭정연호가 부기 되어있다

 

글자체가 웅혼한 이 글씨는

선조의 아들 의창군이 썼는데

병자년 겨울에 청나라 오랑캐가 내려와

남한산성에서 항복을 받고

오십만 인질을 끌어갔다 하니

 

겨울철 만주의 청군이 내려오기전 아직 태평성세에 이 글씨를 썼을 것이다

 

영화 활의 도입부엔 이런 말이 나온다

(외교를 모르는 사람들이 국정을 맡으니 장차 환란이 올것이다)

 

조선 조정은 9년전 정묘호란을 겪고도 재침을 당했다

 

외교는 친명의 강성외교를 펼치면서 국방대비는 안했으니

국란을 자초한 면이 있다

 

조선의 항복을 받음으로써 뒤의 후환을 없앤 청은

명나라 정벌에 집중할 수 있었고 결국 베이징으로 입성했다

 

300년을 못채우고 푸이는 허수아비로 자금성에서 쫓겨났으며

19세기 한족의 전폭적인 지지를 못얻고 한족 인재를 제대로 쓰지 못한 청조는

서양과 일본에 그냥 살과 뼈를 발라내주며 망했고

이런 사태는 조선의 망국에 깊은 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한다

 

따라서 병자호란의 피해는 삼백년을 넘어가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정세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활이란 영화가 관객의 집중도를 끌고 갔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데

만약 그 집중도 유지가 긴박한 전투상황이 주된 이유였다면 슬픈 일이다

 

활이란 영화는 우리 민족의 비극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 영화이다

중국어와 그리고 한국어와도 매우 이질감있게 들리는 만주어

 

만주어가 상당분량 나오는데

나는 만주어를 전혀 모르지만 이런 말을 복원한 제작진에 대해 점수를 주고 싶다

 

현재 만주어를 쓰는 사람이 수십명도 안된다는 인터넷 기사는 알지만

만약 만주어가 어떤 식으로 기본 얼개가 되어 있는지 입문서라도 있다면

한 달 쯤은 시간을 투자해서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그렇게 용맹하고 전투력이 강하며

머리에 변발을 해서 주체성을 유지하려 했던

고려로 말하면 금나라 사람들 그리고 그 400년 뒤쯤에 청나라 사람들은

다 지금 어디로 갔는지?

 

한족으로 완전히 동화 되었는지

그리고 오십만이 끌려갔다면 그 조선 사람들의 후손들은 어찌 되었는지

완전히 흡수동화되었다고 봐야 하는지

넓은 만주

지금은 동북3성이라 하더만

 

만주어를 안다면 언어가 사라지고 나서 그 흔적은 남는 법인데

그런걸 알아보고 싶은 충동은 있고 먹고 사는데 바쁘니 곧 잊어버릴테니 그것도 슬프다

 

박해일은 가벼운 멜로 코믹배우하면 어울릴거다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갔었고

한강의 괴물과 싸우는 영화 괴물에서도 그런 가벼운 존재감으로 비쳐서

여동생 배두나 만큼 진지한 인상을 받지 못했는데

 

영화 활을 보면서 나는 생각을 바꿔야 했다

 

박해일은 앞으로 30년은 스크린에서 봐야 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상대역인 주르첸 사수 류승룡의 경우는

무인으로서의 캐릭터를 유지하면 되니 박해일보다

배역이 입체적이지는 않다

 

다만 류승룡의 연기에 대한 칭찬의 행렬에 나도 동참한다

 

영화 활은 한여름 무더위를 식혀 주었다기 보다는 보고 나오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나라는 어떤지 모르나

나는 그 박해일처럼

아슬아슬한 위험속에서 여전히 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관을 나오니 무척 더운 날씨였는데

마치 청군의 화살이나 밧줄이 내 목을 노리고 날아오듯이

환상적이지만 사실적인 느낌이 강렬하여 나는 오싹했고

지금 하루가 지나서도 마음이

대단히 불편하다

 

활은 볼만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