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매화<Quatre-vingt-duex>

guem56 2011. 6. 22. 02:04

한잔의 술을 마시고

이른 새벽

 

머리는 몽롱하나

손은 말을 듣던 시간

 

나는 늘 매화를 그렸다

 

매화를 그린 시간은 짧았으나

매화가 사는 시간은 길었다

 

주인이 게을러서

물을 오래 못 씌운 매화는 말라죽을뻔 했으나

말라죽기 전에

 

심성이 한결같지 않은 주인을 만나선지

종이가 구겨지고 매화 역시 갈갈이 찢겨

꽃을 피우지 못한 채

겨울이 오기 전에 매화는 떠났다

 

이제 나는 매화를 그리면

그 매화가 살게 할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 나면

生을 피워준 주인은 자리를 비키듯이

내가 매화의 생사에 간섭했음은 월권이었다

 

그린 사람이 주인이라는 생각을 버리는데 이십년 세월이 흘렀다

 

비록 종이 위에서지만 오래 오래 살아

숨막히는 세상이지만

너는 오래 살아

내 삶의 지친 모습을 구경하며

네 생을 즐기길 나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