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산티아고 가는 길<Soixante-douze>

guem56 2011. 6. 10. 15:50

바다는 색이 조금씩 다르다

모래밭이 넓은 바다는 물가의 바닥이 모래 빛이 나고

경사가 급하여 물이 깊은 바다는 푸른색이 짙어 검은 빛이 난다

 

 

파랗고 눈이 닿는 곳마다 푸른 바다색은 사람을 해변에 붙들어 둔다

 

 

강릉을 내려가 죽서루 오십천을 더 지나가면

울진 가기전에 근덕을 거쳐 호산이 있다

 

 

은어떼가 오르는 물소리 시원한 얕은 강이 가로지르는

호산시내는 한뼘이다

 

옹기종기 작은 병원과 학교들이 들어서고 촘촘히 집들이 있다

강원도 어디나 그렇듯이 해가 뜨면 골짜기 골짜기에서 아이들이 학교로 모여든다

 

 

물줄기 따라 가면 바다가 있다

 

1980년대 어느해 어느날 나는 호산에 갔다

 

기둥이 아무리 봐도 똑바르지 않은 툇마루 있는 함석집에

나이 지긋하신 어부 내외가 사셨다

 

 

한쪽 방을 민박으로 내주셔서 거기 나무마루에 지금은 사라진

산야로 석유버너를 그을음이 묻은 코펠을 얹어 밥을 하고

참치 통조림을 따서 소주를 마셨다

 

 

같이 갔던 길우는 노래를 하나만 들었다

(Before the dawn)

날이 밝기 전에 테이프에 그 노래가 나오면 밤이 깊어서 잠들기 전까지

녹음기는 그 노래를 돌렸다

 

애상조의 그 노래를 나는 다시 듣지 않는다

 

길우는 술을 좋아하여 술의 바다로 여행을 떠났고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사촌 동생이다

 

 

호산엔 박중위가 살았다

박중위는 나의 친구로서

누구보다 규율을 싫어 했으나

 

박중위 부친은 아들이 학사장교 ROTC를 하여

장교로 군대가는 것을 박중위가 초등학교 때부터 누누이 말씀하셨다

 

 

박중위는 제대를 하고 호산

그 먼 동해의 푸른 바닷가에서 선생님이 되었고

백수건달인 나는 그를 찾아 바다를 찾아 어느 해 여름

호산엘 갔었다

 

 

민박집 앞에는 파도가 잔잔했고 해안엔 미역같은 해초가 밀려 들었다

낮에 아무도 없는 그 모래밭에서 길우와 나는 미역을 건져 국을 끓이고

며칠을 묵었는지 모르지만

소주병을 수북히 쌓아놓았다

 

밤에는 박중위가 와서 기타를 쳤다

 

그는 기타보다는 노래를 잘 불렀고

송창식노래를 탁음이 아닌 고음의 쇳소리로 불렀다

 

 

언젠가 모닥불을 피우고 그가 노래를 불렀을 때

연이어 계속 불러야 했다

 

모여앉은 여학생들이 다른 놀이며

쓰잘데기 없는 언어교환을 작파하고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더 모닥불을 피우겠다고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박중위는 공을 잘 찼다

작지 않은 체구에 언젠가 상대 문전에서 몸을 띄워 반대 방향으로 오버헤드킥을 찼다

 

이런 저런 이유로 박중위에겐 늘 여인들이 있었다

 

 

고향 집에 와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고

객지에 가도 역시 누군가와 차를 마셨다

 

 

나는 청춘을 아주 길게 술로 보냈고

박중위는 노래를 부르고 차를 마시며 여행을 하면서 청춘을 짧게 채웠다

 

 

서로 다른 취향의 사람들의 우정이 금가지 않고 오래 가는가 보다

 

 

그때 호산에서 별아씨와 인사를 했다

나는 박중위가 인사를 시켜준 다른 청순하고 멋진 여인들을 기억에서 지우고

입을 닫고 별아씨와 신선하게 매우 반가운듯 인사를 했다

 

 

함을 팔러 오라 하여 백타산 자락 별아씨 집 앞

어둠이 자정을 넘긴 때까지 추운 동짓달 그 별이 촘촘히 뜨고

선명히 보이던 밤에 콩깍지가 널린 밭고랑 옆 골목길에서

 

개다리 소반에 부치기를 먹으며

덩치가 곰인 별아씨 사촌형제들과 술을 마시던 그 밤은 아주 오래된 역사가 되었다

 

 

 

그들이 함께 살게 된 후

나는 한두해 사이로 별아씨집에 여러번 갔다

 

 

아이를 낳고 세월이 흘렀다

 

세상은 풍파가 많아

박중위와 별아씨를 못보고 건너뛰는 햇수가 늘었고

그들은 붙박이로 안정된 모습으로 살았으나

나는 떠돌이로 아슬아슬한 세월을 보냈다

 

 

감성이 풍부하고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별아씨의 소원은

멀리 스페인을 가는 거였다

 

산티아고 순례길

노란 황토길 또는 풀이 파란 녹색의 구릉

그 먼길을 별아씨는 발이 아프도록 걸었으면 좋겠다고 늘 말했다 한다

 

 

박중위가 술자리서 별아씨 이야길 할 때 들은 이야기 였다

 

1

0년전이런가?

자운산 아래 어느 펜션에서

같이 청춘을 보낸 친구들이 가족까지 무려 삼십명이 모인 적이 있었다

 

밤늦게 나는 물어물어 거기를 찾아갔다

 

가마솥에 옥수수와 감자가 가득 누워서 벌써 다 익었는데도 더운 김을 내뿜던

새벽에 남자들은 카드를 치고 아낙들은 수다를 떨던 때

 

마당 한켠에 그렇게 저녁을 많이 먹고도 속이 꺼져 옥수수 하나를 먹어볼까

별빛에 걸음을 옮기던 때

별아씨를 보았고

 

잠시 말을 나누던 중에 다시 그 산티아고 가고 싶단 말을 내 귀로 들었다

 

 

신앙이 있는 별아씨는 뙤약볕이 대단한 그 먼 순례길을 걸으면서

마음의 갈피를 구겨진 곳과 펴진 곳 골고루 다리미 질 하려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작년인가 그 전해인가?

내가 박중위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동해바다로

모처럼 밤을 보내러 간 적이 있었다

 

그 다음날은 그 차를 내가 운전하고 돌아왔다

 

박중위가 말했다

 

<별아가 지난 가을에 소저하고 스페인에 다녀왔다

그 뒤로 많이 밝아졌고

소저도 아주 건강해졌다>

 

 

소저는 별아씨의 사촌 동생이다

21세기가 되기 전 몇 번 본 적이 있다

이름이 참 아름답고 얼굴은 한 단계 더 시원한 사람이었었다

 

 

이제는 본지가 오래 되어 기억이 가물하다

 

사람은 누구나 가고 싶은 곳이 있고

거기를 가기도 하고

더러 마음속에서 가보기만 하기도 한다

 

 

내가 살아서 산티아고를 갈 지는 모르나

거기는 내 마음에 자리 잡은 가고 싶은 곳은 아니다

 

다만 내가 가끔씩 스페인 요리 프로를 보면서

도마를 안쓰고 과일을 깎는 그 지역 사람들을 보면

밤늦게 잠을 잊고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고

축구에 인생을 거는 그 사람들을 보면

스페인에 가게 될 수 있다면 갈 것이고

 

험프리 보가트나 잉그리드 버그만의 영화에 젖어서 그런지

스페인을 거쳐 마록(Maroc)의 탕헤나 카사블랑카에 가보고 싶은 생각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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