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이야기

경춘선<Quatre-vingt-quatre>

guem56 2011. 6. 23. 16:33

강촌

경춘선이 지나는 역이다

한때 그 강촌역에 내리면 출렁거리는 현수교가 있었다

강물은 푸르렀고

쇠로된 현수교는 줄에 매달린 채

붉은 색 페인트로 옷을 입어

 

서울에서 숱한 청춘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었다

그 다리도 사라지고

이젠 경춘선도 강촌역의 철로를 폐선으로 만든 채

서울가는 전철로 바뀌었다

 

기차가 사라지던 날 용이를 생각했다

사라지던 때 뿐이 아니라

나는 경춘선을 타면 늘 용이를 생각한가 보다........

 

 

비가 오는 새벽

먼나라 터키 어느 산악에 1만년이 더 먼 때

사람들이 제단을 쌓고 기둥을 세우고 경건하게 뭔가를 기원했다는

르포를 읽다가 나는 강에 나간다

 

빗소리가 굵어지면 특히

장마가 시작된다 해서 그런지 천지에 습한 기운이 밀려오면

차를 마시기 보다는 새벽이라도 술을 한잔 해야 한다

 

공지천

언제나 겨울이라도 여름이라도

안개가 짙다

겨울엔 얼음을 뚫고 더운 김을 강물은 토해내고

여름엔 짙은 운무 작은 물방울의 안개를 뿜어낸다

 

사람은 저 안개 그 작은 물방울을 셀 수 없다

가까이 가면 없고 멀리서 보면 안개

사람도 그런거 같다

 

안개처럼 사람도 실체가 없는거 같기도 하다

 

공지천에선 미군부대 철조망이 보이고 그 앞엔 지금은 사라진 춘천역 역사가 있었다

 

어느해

이른 새벽 다섯시

첫차를 타려고 용이는 춘천역으로 달렸다

약사리 고개에서 남춘천역으로 갔으면 차를 탓을 것이나

내가 말을 잘못 건네

역사로 들어서는 순간 기차는 떠났다

 

그래서 차를 놓치고 다시 하릴없이

주만성이 하숙집으로 터덜 터덜 걸어와야 했다

 

작년 겨울 홍천중학교를 졸업하고

늘 같이 놀던 닭바위친구들은 봄내의 고등학교로 시험을 치러 왔으나

용이는 빠졌다

 

용이는 늘 말이 없었고 얼굴에 미소가 희미했으나 전체적으로 얼굴이 어두웠다

그는 철도고등학교로 갔다

 

부모님이 일찍 떠나신 세상엔

나이 많으신 형님이 계셨고 형님댁엔 용이와 나이가 비슷한 조카들이 서넛 살았다

그리하여 대학가기 위해 고등학교를 가느니 학비를 감해주는 철도고로 용이는 자진해서

떠났다

 

홍천중학교에서 공부를 제일 잘했던 용이가 서울 어딘가 있다는 철도고등학교로 떠나자

우리는 말이 없었다

 

쭉정이들도 세상사 뭔가 뒤틀린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용이는 서울로 갈 때면 봄내로 들려 일요일 밤을 묵고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갔다

철도고등학교를 나오면 기관사나 역무원이 된다

 

그리하여 용이는 차비를 안내고 기차를 탔다

어느 해 여름 용이는 먹을 쌀을 한 말 가져와서 춘천역에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땐 일요일 낮이었는지 낼 아침 가고 놀고 가자 하여

그 쌀자루 위에 종이를 붙여 이 쌀을 건드리지 마세요 써놓았으나 새벽엔 그 쌀은 증발했다

그런 웃지 못할 흔적을 남기면서 고등학교가 끝나고 용이는 철도청에 들어가

기관사가 되었다

 

주로 화물차를 몰고 중앙선 태백선을 다녔다

부산 대구 영주를 늘 다녔다

 

서로 사는 법이 달라 자주 못 만났다

어쩌다 추운 겨울 그가 휴가를 받아 오면

돈을 버는 사람인지라 술을 톡톡히 사고 갔다

 

다른 친구들이 용이가 동대구역에서 차를 몰며 그 앞에서 자취할 때

거기를 한 번 털러 갔으나 나는 기회를 놓쳤다

언젠가 내가 이런 말을 용이에게 건넨 적이  있다

 

<기관사 하면 차창 너머로 나무도 보고 바다도 보고

아스라하것네....>

 

한참 뜸을 들인 용이가 말했다

 

<......기관차 운전칸은 겨울엔 춥다 난방이 부실하고

여름엔 찐다 ...그리고 끝없이 가다보면 역시 끝없이 졸린다

차가 안좋으면 기관사 자리엔 소변볼 곳이 마땅찮다 하여

비닐이나 병에 오줌을 담아 밖에 버려야 한다......>

 

80년대 이 땅의 선로위의 기차는 낡았었고

다른 세상 만큼이나 피곤하였을 게다

 

이런 대화를 나눈후 또 몇년이 흐로고

나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용이를 보았다

 

우리가 놀러가면 자주 밥을 차려주시던 친구 어머님께서 돌아가셨기에 거기서 만났다

더운 여름 빗줄기가 있었는데

용이는 차로 가자 했다

 

그가 차를 가져와서 차안에 들어가 밤이 샐 무렵까지 두런두런 이야길 했다

 

야간대학 경영학과를 기관사 노릇하면서 졸업한 용이는 어느 회사에 취직을 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부서인듯 한데 자기는 거기가 적성에 맞는 듯하고 일은 할만하며

앞으로 이리이리 풀린다

 

평소 말수가 적던 그가 설명을 한참 했고

나는 그게 사실이라고 짐작했다

 

그 애는 머리가 좋았고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빼먹기 쉬운 세상 보는 눈이 유장했으며

무엇보다 끈기가 있었다

 

한 해가 갔는지 어느 깊은 가을 용이 소식이 날라들었다

용이가 고속도로를 운전하고 가던중 갑자기 건너편에서 큰 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들어와

부부가 탔는데 용이는 바로 떠났고 부인은 현재 혼수상태로 대전 어느 병원에 있다는 소식이 왔다

 

대개 고속도로는 중앙에 튼튼한 분리대가 있는데 마침 그 분리대 끝나고 빈 지역으로 트럭이 들어왔다는 거였다

사고 치고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다

 

부인이 혼절한 채 병원에 있던 시간에 용이는 저승길로 갔다

 

그와 함께 철도고를 다녔던 친구들이 더 슬프게 울면서 그를 배웅했고

용이 살던 홍천 땅

 

가끔 영화를 보러 가던 홍천 성당 천주교 묘지에 그를 안장했다

땅에 서리가 이미 두터운 11월

 

용이는 흙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그 아래켠에서 한없이 술을 마셨다

 

그 이듬해 또는 몇 년 더 11월이 되면 그 무덤을 찾아갔었는데

요즘엔 간 지 오래다

 

세상은 그렇다

 

머리 좋은 사람

운동 잘하는 사람

뛰어나서 그런지 하늘이 시샘해서 그런지

살아볼만 하면 데려 간다더니

 

나는 쭉정이로 남아 새벽 술을 늘 마시고 산다

 

가끔씩 책을 보다 보면

나보고 공부 많이 해서 출세하라던 그 춘천 기차역에서

떠들었던 용이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이 신새벽에 일어나 앉아 어느날 책이라도 한갈피 뒤적임은

죽어 저승에서 그를 만날 때 한뼘이라도 덜 부끄러워 볼까 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