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형사 콜롬보<Quatre-vingt-huit>

guem56 2011. 6. 27. 15:24

예전에 흑백텔레비전을 보던 때

지금은 나이 지긋한 정치인이나 그룹회장으로 잘 나오는 박근형이

팔도강산이란 프로에서 김희갑의 사위로 나오던 시절

그때 피터 포크의 <형사 콜롬보>를 보았다

 

홍천 초등학교 뒤편

논을 따라 골목길을 돌다보면 가파른 언덕

밤나무가 가지를 드리운 계단을 올라가야 하고

다다미 방과 툇마루를 거쳐 철이네 집 안방으로 가면

 

월튼네 사람들도 나오고

어느날은 형사 콜롬보도 나왔다

 

형사 콜롬보는 늘 흰색인지 레인코트를 입었고

시가를 피웠다

 

범인은 대개 부유층이거나 권력층이어서 그런지 큰 저택에 거만하게 앉아 있었고

콜롬보는 무엇을 물어보다가 현관문으로 나간다

 

나가는듯 다시 들어와 두 팔을 허리 옆으로 벌리면서 미안한 듯

그런데 한가지 ...하고 다시 물어본다

 

그러면 꼭 그 사람이 범인으로 나중에 잡혀가는 듯한 암시가 나오는데

그때 중학교 1학년 때라 그런지 그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콜롬보는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가서도 콜롬보는 나온듯 하고 그땐 콜롬보가 재미있었다

주로 밤에 열시 넘어 하는 그 드라마는 자정을 넘길때도 있었는데

별로 증거도 없고 목격자도 없는 사건을 맡아 차츰차츰 범인을

관객에게 진범으로 확인해 주는 방식은 감탄스러웠다

 

물론 지금 다시 본다면 그 각본에 어떤 미흡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나

당시 보고 들은게 적은 나는 콜롬보의 완벽한 구성에 그냥 압도되었다

 

배한성의 목소리도 늘 기억에 소리의 기억에 저장되었다

 

괴도 루팡이나 셜록 홈즈 책을 읽기는 했으나 다 연결이 안되었다

왜냐하면 책이 귀해서 여기저기 내용이 떨어져 나가거나 여러 권이 있다면 드문드문 읽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퍼즐을 맞추듯이 플롯의 치밀함을 경험하고 그걸 세상 사는 지혜로 만들어야 하는데

책 자체가 없던 때

있어도 그저 밤이나 낮이나 정석과 종합영어 책을 보고 또 보아야 하던 시절에

콜롬보는 내 머리를 망치로 치듯이 지적 충격을 주었다

 

그 콜롬보 형사 피터 포크가 세상을 떠났다 하니 서운한 감이 있다

흑백텔레비젼 앞에 붙어 앉아서 드라마가 끝나갈때쯤 되면 좀 더 했으면 하고 조바심을 내던 때

그때가 지나니 삶에서 진한 즐거움은 사라진듯 하다

 

요즘은 볼만한 드라마 다큐가 수십개 채널에서 넘쳐나도

사람이 옆에 있건 혼자 앉아 있건 심심함에 주눅이 드니

내가 내 혼을 어느 정도 어디다 팔았는지도 모르게 저당을 잡힌 듯 하다

 

이미 나이가 12살이 넘으면 사람은 정신을 집중할 때가 너무 많아지고

요즘같이 손바닥에 화면을 들고 다니는 때에....인간은 뭘 보고 싶고

뭘 보고 느끼는 존재가 아니라

뭘 봐야 하는 존재이고 그리고 감각을 축적할 시간이 없이 다른 걸 또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