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야신본색<Quatre-vingt-onze>

guem56 2011. 6. 30. 15:11

야구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야구하는 동호인들이 늘어서 연습하고 시합하는 야구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난리다

 

누구나 좋아하는 선수가 있고

잊을 수 없는 경기가 또한 있다

 

그 옛날 최동원 선수가 7차전 마지막 등판해서

우승한 롯데의 경기를 길을 지나다 어느 골목에서 보았다

 

한미대학야구 할 때 몸집이 커다란 미국선수들에게 다리를 번쩍 들어올려 삼진을 잡아내던

최동원의 모습은 늘 떠오른다

 

내 마음속엔 비가 오면 생각나는 전설의 야신이 있다

 

내가 다니던 홍천 중학교는 가파른 진흙언덕을 올라 학교로 들어갔다

농고와 같은 운동장을 쓰던 중학교는 닭과 소를 키우는 풀냄새가 그윽했으며

아카시아 꽃잎이 날렸다

 

가파른 언덕길을 교모를 쓰고 허이허이 올라갈 때 우리는 길을 비켜서 걸어야 했다

중학교엔 야구부가 있었고 야구부 학생들은 아침 일찍 그 가파른 고갯길을 아래로 내려가

전속력으로 위로 질주했다

 

감독님의 호루라기 소리 따라 종아리에 힘줄을 만든 채 뛰어오르고 다시 반복하는 야구부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참 야구 안하길 잘했다던가 그렇게 내심 생각하면서 그 고개를 늘 올라다녔다

 

언덕에 오르면 멀리 화양강이 아스라이 펼쳐진 기(氣)가 흐르는 학교였다

홍천중학교 야구부 성적이 어땠는지 나는 기억이 가물하나

 

조선 팔도 야구 좋아하는 사람은 대충 기억하는 전설의 인물이 홍천중학교를 다녔고

바로 내가 맨걸음으로 올라가도 숨이 턱에 차는 그 고갯길을 수도 없이 뛰어올라 다녔다

 

기세봉이라는 투수가 있다

1977년 서울 충암고엔 현재도 야신으로 정정하신 김성근 감독이 있었고

광주의 조범현감독이 선수로 있었다

 

수유리가는 방향의 신일고는 그해 기세봉투수와 황금사자기 8강전에서 맞붙었다

기세봉은 9회말 투아웃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2대 0으로 이기던 충암고는 아니 기세봉은 신일고 3번과 4번에게 안타를 맞았고

5번 김남수에게 3점 홈런을 안겼다

 

그리고 기세봉은 주저앉았고 김성근 감독은 울었으며 포수 조범현역시 망연자실하였다

 

그 신일고 3번이 내 기억으론 현재 LG감독 박종훈이고

바로 이 박종훈이 홍천 중학교 언덕길을 뛰어 오르던 그 학생이었다

 

그리고 거기엔 해태에서 활약하던 조충렬 선수도 있었다

조충렬은 현재 뉴질랜드 남섬에서 살고 있다

내 마음의 야신은 그런데 따로 있다

 

그때 홍천중학교 야구부는 여러 초등학교에서 선수를 받아들였다

내가 졸업한 홍천초등학교 그리고 홍천중 바로 아래 석화학교와

 

십리길 북으로 봄내시 가는 길가에 코스모스가 늘 호젓한 화계(華溪)초등학교에서 어린 선수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흰공으로 서울로 가보자 하여 모였었다

 

장수호

그 이름 석자는 내 중학교 고등학교 동기이며

그가 세상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이름 찾기 힘든 화계초등학교를 나왔고

 

당시 화계학교는 전국 어느 야구대회에서 우승을 했으며

장수호는 그라운드의 여우 김재박처럼 던지고 치고 달리는 만능의 선수였다

 

눈빛이 성성한 그는 수업시간을 오전만 하고 슬그머니 운동장으로 빠져나갔다

공부도 잘했던 수호는 어느날 부터인가 시험은 안보았는지 아무튼 야구에 전념했다

 

천주교 묘원을 따라 북으로 가는 화계로 가는 길은

꼬불꼬불 자동차로 가면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리고 그 굽이굽이 아스팔트 길은 아래 위가 짙은 송림이어서 대낮에도 어두웠다

 

장수호는 이른 새벽 그리고 늦은 저녁 그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늘 말이 없었고 눈빛에 불이 일어서 그에게 말을 거는 학생들이 없었으나

 

누구나 저 애는 장차 이 나라 최고의 야구선수가 될거라 그렇게 짐작했다

가방을 들거나 하릴 없는 시골중학생들이 너나할거 없이 웃고 떠들면서 쓸데 없이

학교 울타리 안이나 호국사 종소리 들리는 개울가에서 낄낄거리며 놀 적에

 

장수호는 이른 아침 늦은 저녁

조선시대 선비같이 입을 다물고 성실하게 운동을 했으며

 

컴컴한 저녁길 노는 아이들 사이로 천천히 자전거를 몰고 가다가 사람이 뜸한 곳

영림서 앞골목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바람처럼 안장에 올라 가물가물한 그 고갯길을 바람처럼 사라졌다

 

한해 두해 세월이 흐르고 우리는 고등학교에 갔다

내가 봄내 고등학교에 갔을 때 625후 미군이 건네준 시멘트로 지어서

원자탄이 터져도 끄덕없다는 단단한 교사의 봄내 학교 교정에 장수호가 있었다

 

이건 뭔가 단단히 잘못된 거였다

봄내고등학교에도 야구부는 있었다

 

그러나 야구로 대성하려면 서울로 그것도 신일로 가야했다

이미 한학년위인 박종훈이 그리로 갔고 그리고 나와 초등학교 같은 반이었던

야구선수 호근이도 신일로 갔다 그는 신일외야수로 3.4.5번은 아니었으나

늘 경기에 나왔었다

 

장수호는 강원도를 사랑했는지...

봄내고교 야구부로 들어왔다

 

나의 모교지만 봄내고는 야구부 성적이 안좋았다

내가 다니던 때 8강에 한번 올라갔는지 그게 기억이 흐릿하다

 

이런 이야기가 지금도 떠돈다

중3때 홍천중학교를 찾아온 봄내고의 야구감독님의 간절한 호소에 수호가 귀가 솔깃하여

(나의 힘)으로 이 학교 야구부를 빛낼 수 있다

이리 판단하여 수호가 당당하게 봄내시로 왔다는 이야기도 있고

 

예전과는 달리 엄청난 야구부 지원이 있을 것이니 안심하고 서울 가지 말고 이리 오라는

실현이전의 언질을 사실로 받아들여 왔는지 아무튼 수호는

늘 오후와 저녁에 내 눈앞에서 야구를 했다

 

그때 야구부는 참 열악한 환경이었다

늘 1학년 학생 하나가 노란 주전자에 수돗물을 받아서 스탠드 넘어 운동장으로 저녁때면 걸어갔었다

가끔씩 가물에 콩나듯이 운동장 저편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야간 자습하는 교사로 날아들었다

야구부학생들이 회식을 하는 자리였다

 

홍천중에서 봄내고로 올라온 장수호의 1촌 친구들인 마카오최와 주만호는 늘 걱정을 했다

수호는 아무래도 잘못 온거 같다

 

세월이 가고 수호는 대학 야구팀에 안간듯 하다

 

매양 야구중계를 볼라치면 수호가 생각난다

 

그 까무잡잡한 얼굴

평소 말이 없으나 공을 던지고 잡고 배트로 치면서 마치 샤라포바처럼 지르는 괴성

홍천중학교 운동장 철망앞에 떨어지던 숱한 야구공과 거기에서 달리고 넘어지던

거인같던 수호의 모습이 아련하다

 

풍문으로 그의 소식을 들었다

서울 어느 대기업에서 회사생활 잘하고 있고 먹고 살만하다는 이야기 였으나

나는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많이 슬펐다

 

기수양이복염거혜(驥垂兩耳 服鹽車兮)

하루 천리를 달리는 준마가 두 귀를 늘어뜨리고

소금수레를 끄는구나....

 

가의(賈誼)가 굴원(屈原)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노래의 일구이다

 

인생은 이렇게 흐른다

 

그러나 장수호는 내 마음 속의 야신으로 남아있다

깊은 밤듕 굵게 떨어지는 빗소리에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나는 상념에 젖는다

 

살아오면서 내 연장은 무엇인지 아직 모르나

내가 글러브를 끼고 배트를 휘드를 수는 없으나

내 연장이 어딘가에 있어

 

세월이 가도 그걸 쓸 수 있다면 이제 술잔을 내리고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 살다 죽으면 가난하고 시들하게 살았던

내 옛날 고향이 그렇고

거기서 살던 사람들이 너무 쓸쓸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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