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옥수수<Cent vingt-sept 127>

guem56 2011. 8. 17. 12:51

비가 많이 와도 옥수수는 자라나 보다

 

강릉에 위촌리 그 마을 사람들은 위추리라 하던데

위추리 옥수수와

단풍이나 낙엽을 밟고 사는 동네인지 홍천 답풍리

그리고 또 어디선가 세 군데에서 옥수수 담은 자루가 우리집으로 왔다

 

옥수수를 찌면 단 내가 난다

소금을 조금 넣기도 하고 설탕을 넣어 삶기도 하는데

나는 작은 걸로 각각 한 토세이

합해서 세 개쯤 먹었다

 

토세이란 말은 시동 유치리에서 쓰는 옥수수를 세는 수사이다

옥수수는 자갈돌이 섞인 비탈에서도 나고

그냥 밭에 감자밭에 껑충 키가 커서 얇은 그늘을 만들기도 한다

 

여름

매미가 울기 전

아카시아 꽃잎이 떨어지고 나서

옥수수는 여문다

 

누런 황소 여물구유옆에 시퍼런 작두가 있고

풋내나는 옥수수 대는 작두에서 잘려 나갔다

 

유치리 아이들은 봄이 오면

진달래 꽃잎으로 시작해서

벚나무열매를 먹다가 아카시아 흰꽃잎을 포식하고

 

그러고 나면 옥수수 대를

미처 옥수수 찌기 전에

낫으로 그어 그 단물을 입에 적신다

 

내가 유치리를 떠나 단 한번도 옥수수 대를 입에 물어보질 못했다

그 맛이 그립다기 보단

 

옥수수는  서럽게 내 가슴에 새겨져서

나는 여름 한철 그 구수한 옥수수 찌는 냄새가 아스팔트 옆에 진동을 하고

또한 이웃이 잘 삶은 옥수수를 가져와도 별로 손이 가지 않는다

 

옥수수란

밭에서 베어 바로 껍질을 마당에 수북이 쌓아놓고

붉은 옥수수 수염이 얼기설기한 그런 걸

가마솥에 바로 쪄야 한다

 

여름날

더위를 피해 부엌이 아닌 마당 한켠에 걸린 가마솥에

되는대로 수북이 들어앉은 옥수수가

김을 뿜어 솥뚜껑을 살짝 밀어올려 치익 소리가 날 때

그리고 그 열이 식을 때를 진득하니 기다려

 

단물이 삼삼하게 흘러내리는 제대로 무른 옥수수를

한 입 베어물때

그게 옥수수의 참맛이다

 

밭에서 옮겨 마당켠에라도 하루 묵으면 맛이 살짝 떨어지고

차라도 태워 도시로 옮기면 맛이 조금 더 떨어진다

냉동고에 바로 넣어 달포 지나 삶으면 역시 맛이 조금 더 떨어진다

 

그래 먹어도 그 맛은 달고 고향의 그림자가 눈에 삼삼한데

나는 맛을 보아 입이 즐겁게 되기 보단

쌀이 귀해 옥수수를 서너개 책보에 싸와서 쉬는 시간마다 하나씩 먹던

지금은 이름을 잊은 애들이 생각나 옥수수는 잘 먹지 않는다

 

 옥수수를 잘 먹을 날을

 나는 기다리는데

옥수수 떡이란게 있다

 

옥수수 잎에 싸서 먹는데 옥수수 가루를 쪄서 만드는지

 입안에 넣으면 달면서

깔끄러운 감이 있다

 

차를 타고 백두대간 어딘가를 가다가 식당에 들어

옥수수 막걸리란 상표위의 글씨를 보고 그 술을 많이 마신 적이 있다

 

언젠가 좋은 날이 오면

나는 올챙이 국수와 옥수수 떡을 놓고

그때서야 내 좋아하는 옥수수를 여러 개 맘놓고 하모니카 불듯이 먹을 거 같다

 

이 여름에도 나는 옥수수 서너개를 띄엄띄엄 먹으면서

내 나이 아홉 살이던가

 

흰 날과 검은 낫등이 태극무늬처럼 어우러진 조선낫으로

사각 자른 옥수수 대에서 단물을 입에 적시던

그때로 아련이 돌아가

한두시간을 멍하니 앉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