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장마<Cent vingt et un 121>

guem56 2011. 8. 8. 17:39

7월 내내 비가 내리더니

팔월에도 맑은 날이 드물다

 

오늘 아침에는 해가 났으나 어제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70년대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웠으나

지금보다 더위가 짧았고 비오는 기간도 소나기 퍼붓는 날이 적은 듯 했다

 

금은산 아래로 먹구름이 짙어지면 천둥과 번개가 요란하게 치고

굵은 빗줄기가 엄청나게 내리던 날은 지금도 어제 같다

 

시동엔 그때 도롱이와 삿갓이 남아 있어

동샛골에서 논물이 걱정되어 푸른 논 한가운데 누런 점으로 남은 농부는

머리엔 커다랗고 무거운 삿갓을 이었고 몸엔 이엉처럼 보이나 얇은 도롱이를 걸쳤었다

 

큰 물이 지면

저수지 문이 열리고 멀리서 쏟아지는 물이 보였고

사흘 쯤 지나면 앞개울 흙탕물은

버드나무뿌리를 감아 흐르다가 물빛이 순해지면서 아이들이 건널만하게 줄어들었다

 

그러면 동네 아재들이 물고기 올라온다고 족대를 들고 개울로 나갔었다

 

다랑이 논에 더러 논둑이 터지고

장마비에 푸른 벼가 휩쓸려 논임자는 장탄식에 지쳐

논두렁에 망연히 앉아 있기도 했다

 

나는 이여름

바깥 더위를 차단하는 에어컨 질 나쁜 공기에 푹 감금되어

먼 나라 운남성 홍하현 하니족 사람들 사는 모습을 다큐로 본다

 

아득하니 높은 산자락을 거대한 분지모양으로 다락 계단논을 만들고

검은 옷을 입은 남녀가 무논에 무릎을 담그고

모를 심거나 심은 모에 피를 뽑는거 같다

 

논두렁에 점점이 앉은 이들은 그들의 악기

3,4현의 기타를 켜고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춤사위를 허공에 긋는다

 

예전에 유치리엔 최씨 할아버지가 계셨다

그 동네에서 가장 일찍 일어나신다는 할아버지는 끝부분이 밥공기 같은 피리를 부셨다

 

나는 그 악기 이름을 잘 모르거니와

할아버지 뒤로 괭가리와 상모 돌리는 농악패가 붙어서

동네를 돌았었다

 

이제 모든 것이 사라진 유치리 들판에는

 경운기나 트랙터가 외로이 농부 1인을 태우고 다닐 뿐이다

 

세월이 흘렀고

그 옛날 유치리의 들판과 비슷한 모습을 보기 위해선 먼나라 운남성을 가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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