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리 이야기

유치리 나의 집<Quatre-vingt-neuf>

guem56 2011. 6. 28. 11:03

새벽안개 피어오르는 강가에서 그대 무엇을 생각하는가?

오래 된 나의 집

집을 생각한다

 

 

금은산 아래 저수지 둑이 아련히 보이고

그 아래 점점이 모내기 하는 사람들이 어수선하던 봄이 가면

 

키자란 모가 푸른 빛을 반짝이는 초여름

저녁엔 금은산에 도깨비불이 번쩍번쩍하는데

나는 그게 왜 그리 번쩍거리는지 아직도 모른다

 

고향의 신비감은 남겨두는게 좋을지도 모른다

 

내 집은 문이 두 개였다

작은 초가집이 분명한데 그래도 문이 대문이 두 개여서 나는 이리로 저리로 번갈아 드나들었다

담도 두가지였다

 

짚을 먹인 황토흙벽돌담은 작은 이엉을 얹었고 서녘의 담은 나뭇가지 가지런한 울타리였다

그 울타리엔 호박넝쿨이 타고 올랐고

수세미 줄기와 붉은 알을 토해내는 석류도 서너줄기를 드리웠다

 

매화학교 벚나무숲을 마주한 동녘 문은 작은 밭을 사이에 두었다

문 들어가기 전엔 진보라색과 백색의 도라지가 피었다

 

그리고 그 도라지 보랏빛에 색채가 비스름한 나팔꽃이 이슬을 또르르 굴리며 아침에 열렸었다

밭에는 감자꽃이 피었고 동그란 무당벌레가 잎을 기어다녔다

 

문은 커다란 밤나무 가지아래 있었고 밤나무는 소외양간을 덮었다

 

외양간옆에는 시퍼런 작두가 살아서 옥수수대를 잘라서 튕겨냈고 그 옆에 돼지 한 마리가 조용히 살았다

 

문의 다른 쪽은 닭장이었다

붉은 벼슬이 성성한 장닭이 동서남북으로 몸을 틀며 돌았고

여러 닭들은 횃대에 앉아 졸거나 푸드득 날기도 하였다

 

마당한가운데 우물이 있었고

나는 그 우물을 새로 팔 때 깊은 곳에 굵은 쇠파이프를 박아 넣고 며칠을 기다리던

그 시간이 이세상의 기다림중에서 지금도 가장 길었던거 같기도 하다

 

그때는 몇 살때였는지 모른다

서녘 담쪽으로 가면 무궁화 나무가 있었다 무궁화는 수시로 피었으나

벌레가 늘 많았다

 

밭하나 건너 늘어진 수양버들을 바라보며 울타리를 돌면 앵두나무가 앉았고 그 위에 살구나무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늘 말씀하시길 앵두는 살구나무에 가려 알이 잘 맺지를 앉는다

 

살구나무는 흐드러진 꽃을 피워냈다 살구꽃이 떨어지면 꼭 눈가루 같다

그 숱한 살구꽃이 뒷마당에 떨어져 부엌과 안방으로 날라 들어오고

마침내 꽃닢이 다 사라질 무렵이 되면

먼산과 가까운 들엔 초록이 덮였다

 

살구나무는 또한 그늘을 만들어 그 아래 한뼘되는 딸기줄기가 제대로 열매을 못맺게 하였다

할아버지는 양달로 딸기줄기를 옮긴다 옮긴다 하시더니 세월에 잊으셨다

 

마당의 외양간 마주보는 서녘엔 포도줄기가 성성해서 그늘을 만들고 포도송이는 실하게 달렸다

어른들은 해가 뜨거우면 그 포도그늘에 들어가서 쉬셨으나

나는 포도나무에 가끔 보이는

큰 벌레가 무서워 포도나무아랜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포도나무 저 안켠엔 흰토끼와 잿빛 토끼가 빨간 눈으로 늘 풀을 뜯었다

 

내가 이집을 떠났을 때 나는 심한 집몸살에 시달렸다

 

늘 가고 싶었고 그리고 꿈속에선 여전히 그 집에서 지냈다

지금도 그렇다

 

시마을 매화학교 그 초가를 떠나고 나서

삼년쯤 흐른 날 나는 내 살던 집을 차마 쳐다 볼수 없었다

학교도 그랬다

 

그 키가 커서 아이들 열명이 올라가도 흔적이 보이지 않던

벚나무들이 학교에선 사라졌고

내집의 모든 나무가 새주인 눈에는 땔감으로 보였는지 다 사라졌다

 

625사변이 끝나고 할아버지가 심은 그 밤나무와 살구나무는 그렇게 사라졌다

나는 내 살던 집을 비슷하게 어딘가 다른 땅이라도 짓고 만드는 것을 늘 쉽게 생각했다

 

게을러서인지 그게 그리 어려운건지 어느 아파트 시멘트 격자속에서 잠을 자면서

나는 새벽이면 흠칫 놀란다

 

하여 이제라도 좀 더 열심히 살아서

봄이면 살구꽃이 흐드러지고 늦은 가을 밤송이 떨어지는 소리가

서늘한 아침에 들리는

내집을 만들어야겠다

 

그런 집 울안에 발을 들여놓는 날 나는 제대로 마음속으로 웃을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