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최동원 <Cent quarante 140 >

guem56 2011. 9. 14. 15:33

무덥던 팔월이 지나고

구월이 오더니 타격의 달인 장효조 선수가 세상을 떠났다

 

슬픔이 채 가시기 전에

오늘 아침 최동원 선수도 별세했다는 소식이다

 

전설이라는 단어가 늘 따라다니는 선수 최동원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때 학교에는 야구부가 있었고

야구부성적은 좋지 않았으나

 

고교야구대회는 당시 워낙 인기가 높고

시청률이 높아서 나도 덩달아 규칙도 잘 모르면서 야구시청을 많이 하였다

 

8강쯤 올라가야 중계가 되어서

우리학교 선수들은 나오지 않았으나

경북고나 선린상고 군산상고 광주일고

신일고 ...전국의 여러 고등학교를 텔레비전으로 만났는데 그 가운데

부산의 최동원 선수가 있었다

 

그는 점수를 잘 안내주니 상대팀에서 2,3점 이상으로 점수를 내주면 지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최동원 선수는 4승을 하여 롯데를 우승으로 만든 그 한국시리즈로도 기억에 남지만

나에겐 한미대학야구가 더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팀이 이겼는지 졌는지 이제는 기억이 희미하나

 

최동원은

늘 자신있는 모습으로 마운드에 올라

덩치가 커다란 미국선수들에게 자신있게 공을 던졌다

 

해설자도 그렇게 해설을 했고 공 하나하나가 강력하게 날아가

퍽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나는 듯이 들렸다

 

어이 없거나 멍한 모습으로 돌아서는 미국타자들을 보며

너나 할거 없이 가슴 시원해 했었다

 

고등학교는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미군부대와 거의 붙어 있었다

교문옆에는 미군들이 드나드는 술집이며 여러 가게가 있었다

 

미군들은 주말에 거리에 많이 나왔고

커다란 주스나 콜라병을 들고 다녔다

거리에서 콜라를 마음껏 마시는 미국은 강대국이었다

 

우리는 소풍가서 사이다나 콜라를 먹었으니 일년에 서너번 마셨다

나는 매일 매일 거리에서 콜라를 벌컥 벌컥 마시는

키가 장대같고 등치가 대단한 미군병사를 보고 그 힘과 부(富)에 겁먹었고 그 여파가 남아

한미대학야구를 중계할 때 상대적으로 작은 우리나라 선수들을 보고 으레 맥없이 질 줄 알았다

 

사람들이 최동원을 보고

그 힘차게 던지는 공을 보고 열광하는 것은

그냥 야구게임을 보는 이상의 뭔가 속이 시원하게 터지는 그런 감동이 있어서다

 

이제 한 시대가 가고

최동원은 부산팀 감독을 못해보고 떠났다

 

너무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나심에 아쉬움 매우 크다

그분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