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삼장법사 서유기 <Cent quarante et un 141>

guem56 2011. 9. 16. 14:53

옛날 경제개발 오개년 계획이 라디오 뉴스마다 나오던 때

시동장터 한가운데 무더운 여름날 가설 극장이 들어서면 대한 뉴스 시간에

박정희각하와 여러 사람들이

 

삽 한번 뜨고 무슨 단추를 누르거나 테이프를 가위로 자르던

화면이 흑백으로 하얀 천에 새겨지던 시절

 

 

육영재단에서 발행하는 어깨 동무란 잡지가 있었고

그 월간지엔 작은 부록이 딸려나와 만화 손오공이 다달이 연재되었다

매화학교 교무실을 어정거리다 어쩌다 어깨동무를 만나면 슬며서 복도 한켠에서 보다가

무서운 선생님이 교무실에 혹 계시면 겁을 먹고 저녁 해가 뉘엿질때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는데

 

이러다 보니 부록은 어디 갔는지 몰라 건너뛸 때가 많았으니

삼국지고 손오공이고 제대로 본게 없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 봉사활동 많이 가고 그러면

거기 초등학생 또래 아이들이 허름한 교실에 모여

책을 읽거나 노래를 배우는 화면이 나오는데 나는 그때마다

그 아이들이 예전의 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자도 음료수도 책도 없이 그렇게 살았다

손오공이 하늘나라 올라가 난동을 피우다가 바위산에 갇히던 날

 

어떻게 풀려나나

한달을 기다리며 궁금해했는데

몇 달 뒤엔 삼장법사와 사막을 가고 있었다

 

당나라 초기에 살았던 현장은 600년대 사람이고

서유기를 지은 오승은은 1500년대 사람이다

 

현장이 서쪽으로 떠나 바라문국이라는 인도를 목숨걸고 다녀온 때

당나라는 동녘 고구려 침공에 열중하던 시기이다

 

오승은이 살던 16세기는 조선은 명나라에 사대하면서 평화를 유지하던 시기이다

 

다만 오승은이 떠나고 곧 임진왜란이 일어났으며

이런저런 여파로 만주에선 누르하치가

세력을 얻어 17세기 전반에 병자호란과 명의 멸망이 이어진다

 

오승은은 만권서를 읽었으나

과거엔 실패했는지 평생 가난하게 살았고

듣고 본 숱한 이야기를 현장의 인도여행에 살로 붙여넣어 서유기를 만들었다

 

어린이에겐 환상의 동화요

어른에겐 흥미진진한 인생사 우여곡절의 은유이며

깨달음을 얻으려는 사람에게

또한 이런저런 가르침이 큰 보따리가 서유기이다

 

삼장법사가 실제로 서역으로 갈적엔 옥문관을 거쳐 먼지날리는 풀없는 평원을 지나갔으며

당시 당나라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서쪽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엄한 령이 있었던지

출경하는 순간부터 많은 고생이 있었다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공항을 빠져나가는 유학생이거나

순례를 위해 두터운 사찰의 지원이 따르는 그런 여행이 아니었고

한걸음마다 위험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었고

불법을 받아오지 못하면 고향에 가지 않겠다는 고행과 각오의 여정이었다

 

삼장법사의 대단한 결기와 오승은의 실의 속에서 보낸 긴 세월이

서로 비빔밥이 되어 서유기가 나왔다

 

감동이 사라진지 오래인 요즘

나는 그 옛날 손오공 만화의 다음편을 기다리던

그 지루함과 얇은 만화책을 다 보고 덮을 때의 그 진한 아쉬움을 한번 되새겨 보고자 하나

 

밤이 되면 졸리고 낮이면 무엔지 그저 나른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