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서비홍<Cent trente-duex 132>

guem56 2011. 8. 26. 15:20

서비홍은 중국의 현대 화가이다

항주 소주 상해 삼각지대에 있는 의흥(이싱)출신으로서

그림을 잘 그려 베이징으로 갔고 5.4운동을 일으켰다는 채원배의 후원으로

파리에 유학하여 독일에서도 미술실력을 닦았다

 

베토벤을 가르쳤다는 이탈리아 음악가 살리에리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의 죽음을 장치한 나쁜 인물로 묘사되는데 이게

실제 일인지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 한다

 

살리에리가 영화에선 아주 질투가 강한 사람으로 나오는데

서비홍은 눈에 띠는 훌륭한 제목의 화가가 있으면 발벗고 도와주고 발전을 위해

여기저기 다니면서 후원을 얻어 후배들의 길을 열어주었다

오늘날 그 작품값이 수백억을 오르내리는 서화가 제백석도 만년에 서비홍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강호에 이름을 드러냈다

 

만약 서비홍이 아니었다면 제백석 선생은 초일류 화단의 별로 뜰 가능성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서비홍은 일본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한 조국을 위해

자신의 서화를 팔아 군자금을 댔으며

항일과 중국 민족의 혼을 깨우는 대작을 많이 남겼다

특히 전쟁중에 인도에 들어가서 그린 <우공이산>의 그림은

등장인물이 인도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백가강단에서 이를 해설하는 바를 들으니

우공이산을 그린 장소가 인도이다 보니 우공이산의 정신은

인류에 보편적으로 있을 법한 귀감이 될만해서

인도인 얼굴로 그렸다는 좋은 해석을 한다

 

전쟁이 끝나고 중국은 곧 국공내전에 휘말렸다

장제스와 마오쩌뚱은 서로 지식인들을 자기 편에 끌어들이려 무진 애를 썼다

베이징에 머무르던 서비홍에겐 국민당 쪽에서

 난징으로 내려오라는 연락이 수시로 왔는데

서비홍은 베이징에 남았고

공산주의 중국에서 여전히 환대를 받았다

 

그는 일찍 죽었다

한국땅에서 종전이 된 53년 가을에 환갑도 안된 나이에 서거했다

갑작스런 죽음은 그에게도 중국화단에도 불행한 일이었는데

이미1000편이 넘는 다작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후학들이 배우는 미술교과과정에 소묘 산수 인물 여러 가지 장르를

다 섭렵하도록 했으며 서양의 우수한 기법과 전통적인 중국미술의 장점을 다 이어받아 보다 나은 경지로 나가도록 독려했다

 

내가 그의 그림을 인터넷 화면으로 보면서 어렴풋이 느낀 점은 있으나

본 그림의 화면이 너무 작은 면도 있고

나같은 문외한이 왈가왈부할 처지도 아니라 지금 할 말은 없다

 

다만

격랑의 시대를 부지런히 살았고

주위의 여러 사람과 서로 잘 살아보고 더 높은 예술의 경지를 함께 만들어간 그의 삶은

충분히 오늘날 베이징에 있는 서비홍기념관건물에 값한다

 

내가 눈이 얕고 견문이 짧아서 중국에 저런 예인이 있음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

좀 서글플 따름이다

 

가을엔 여전히

박인환의 시어처럼

바람에 술병이 스러질텐데

나는 이번 가을을 어떻게 시간메우기를 할지

아직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