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하이난의 호어(虎魚)....추자도의 조기<Cent cinquante-cinq 155>

guem56 2011. 10. 7. 14:34

가을 들녘에 벼가 사라지면

메뚜기도 덩달아 없어진다

 

점심 먹고 나서 해가 긴 가을 논을

어두워 질때까지

 

둘이 쌍으로 업힌 메뚜기나

장신의 방아개비를 만나면 뛸듯이 기뻐하다가

 

올벼를 심은 집 마당에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메뚜기 잡이는 내년을 기약한다

 

연평도엔 조기가 몰리고

어부들은 긴 장대를 물속에 넣어

조기 웅얼거리는 소리를 듣는다고 학교서 배웠으나

나는 스물이 되어서야 조기를 알았다

 

그 조기 잡이할때 대나무를 넣어 물고기 소리를 어찌 듣나

많이 궁금했던 때 그 말씀 하신 분은 이규방선생님으로 기억한다

평소 약주를 좋아하셔서 코가 붉으셨다

 

조기는

더러 제사상에 올라왔을 법하나

입이 짧아

숯거멍이 살짝 앉은 새치 껍데기 외에 해물을 먹지 못하고 자랐다

 

중국 남쪽 하이난

바닷가에서 복어처럼 생기고 단단한 가시가 고슴도치 처럼 박힌

라오후위(老虎魚)란 고기가 있다

 

상어가 어쩌다 이 배구공보다 작을듯한 고기를 삼키면

뱃속에서 가시가 수직으로 솟아 상어는 붉은 피를 내뿜으며 죽어가고

주변에 호어가 득달같이 몰려들어 상어를 뼈로 만들어준단다

 

하릴없는 가을 오후

텔레비전에선 신미년 올해 가을

추자도의 조기잡이를 보여준다

 

풍랑이 드센 바다로 저녁이나 새벽에 떠나는 배

어린 아기를 뒤로 하고 머뭇머뭇 배에 오르는 젊은 선장

 

인도네시아에서 와 몇 년을 좁은 선실에서

고향갈 꿈을 새긴 이방인

 

그물에 잔뜩 걸린 조기를 털면서

그걸 바라보면서 뱃사람들은 말한다

 

가난하고 배운게 없어 배를 탓고

이제는 바다를 떠날 수 없다고

 

자녀들은 꼭 잘 가르치겠다고

 

나는 어이하여 실컷 배우고 익히는 책 읽는 사람이 되었는가?

한국문집총간

그 목판 인쇄가 창연한 빼곡한 글자의 책이 수백권 서해(書海)

한때 저 책을 다 읽으면 좋으련만 했으나

 

새벽에 충혈된 내 눈은

책에 시달려서가 아니라

알콜이 혈관에 도도히 파도를 일으켜 그런 듯하니

 

바다에 고기

그를 잡는 어부

높은 파도

 

내 삶은 어느 하나도

여물고 차지게 닮지를 못하고

텅 빈 논의 메뚜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지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