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샤오싱 난정 왕양명 <Cent soixante-trois 163>

guem56 2011. 10. 21. 15:30

난정서에 대한 이야기는 하도 많아

누가 말하면 이미 어느 누가 말한게 된다

 

술잔을 띄워 물돌이를 했다는 유상곡수의 터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명나라의 왕양명 무덤이 있다

 

중학교 때부터 국사시간에

주자학의 고루한 학풍을 어떻게 어떻게 한 조선시대

그리고 양명학이 들어왔으나 배척을 하고...

 

수십년 묵은 이야기라 나는 왕양명이 그냥 유학자인줄 알았다

관리였고 문무와 책략을 겸전한 유능한 무장이었다

 

또한 유불선 두루두루 섭렵했고

깊은 산중에 들어 도사 비스름하게 산 흔적도 있다

 

왕양명은 양자강 가에서 일어난 반란을 거의 혼자 힘으로 진압했으나

조정에선 표창장 하나 없이

역도의 배후가 아닌가 짙은 의심을 보내왔고

무능한 임금은 그를 외면했다

 

광서자치구역의 소수민족이 반기를 들었을 때

지혜를 써서 전쟁이 없이 사태를 해결했으나 역시 조정에서는 묵묵부답이었고

 

다리를 못써 일어설 수 없는 지경의 병상태에 이르러 조정에 면직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권신 계악(桂萼)이 황제에게 보이지 않고 주머니에 쑤셔넣은 뒤

 

답을 기다리다 지친 왕양명이 병이 중해 고향가는 길로 뜨자

무단이탈과 주희를  비난했으며

거짓 학문을 유포했다는 죄목을 엮어 상소한다

 

왕양명는 작은 배를 타고 오다 제자들 앞에서 죽는다

차심광명 역부하언

(此心光明 亦復何言)

 

내 마음이 크게 밝은데 무슨 할말이 더 있겠는가?

 

이제 병세 깊어 세상을 뜨려는 스승에게 남기실 말씀 여쭈자

이리 대답하고 하직한다

 

상소가 참소인줄 모르는 멍청한 명나라 세종은 노해서

왕양명이 죽자 어떤 은사품도 시호도 내리지 않는다

 

40여년의 세월이 흘러 명조정은 문성(文成)이란 시호를 내린다

 

한유가 말했던가

덕고훼래(德高毁來)

 

삶이란 굴곡이 많다

기껀 밀가루 반죽해서 칼국수 만들면

라면 달라는 사람 천지다

 

타인과 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면

크게 발전은 없으나 상심 또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