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이야기

마이 웨이 장동건 남양군도<Cent quatre-vingt-quinze 195>

guem56 2011. 12. 20. 11:16

먹고 살다 보면 세월은 소리 없이 흐른다

춘천 약사리 고개 넘어

양키시장이 있고

 

그 옆 골목에

순대국도 팔고 파전에

전병에 막걸리가 술청 바닥에 흐르는

선술집들이 있었다

 

추운 겨울날이면

배추 된장국을 풀어 한 그릇씩 주고

속의 팥까지 퍼지는 큼직한 하얀 찐빵집도 거기 있었고

 

눈이 둥그런채 찐빵을 먹던 순이는

춘천 떠난지 30년인데 여전히 소식이 없다

 

찐빵집 옆에 해장국 파는 어두컴컴한 집이 있고

이 집 해장국은 선지인데 김치 반찬 옆에 놓는

고추...아주 매운 고추인데

 

고추 씨채로 된장 속에 묻었던 고추를 칼로 아니 칼자루로 찧었는지

한입 넣으면 매워 못 삼키겠다가도 얼얼한 그 맛에 취해

어느날 또 가게 되는 집이었는데

상호는 잊었다

 

그 옆에 충북집이라고 있었다

돈 있는 사람은 삶은 닭고기를 뜯었고

주머니가 힘이 빠진 사람들은

그냥 김치에 배춧국 같은거

 

부치기 한장으로 밀가루 막걸리를 마시던 집이었다

 

어느날 그 집

둥그런 식탁 한켠에 모자를 쓴 반백의

아저씨가 퀭한 눈으로 어디를 보긴 보는데

촛점이 있는 듯 없는 듯

 

탁배기인지

스텐레스 그릇인지 아무튼 넙적한 양재기에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느린듯 덥썩 한잔 마시고 다시

김치 한조각이 젓가락에 걸리고

다시 시간이 멈추고

 

술이란 마시는 것도 좋지만

때론 마시는 사람을 구경해도 취할 때가 있다

 

어떻게 그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고

일행이 와서 우리 술자리가 익을때까지 들은 말은

 

남양군도

거기서 징용살고 왔다는 ...이야기였다

 

삶의 신산(辛酸)을 바닥에 바닥까지 겪은 사람의 눈동자..

 

며칠 후

몇달 동안

그리고 그 뒤로 살아오면서

강산이 변할 때...

 

나는 그 아저씨의 술마시는 모습이 꿈속처럼 늘 가까이에서 피어난다

더 많이 물어보고 더 이야길 들었었더라면

 

그리고 당시엔 그 분 말고도 그런 여정을 겪은 사람들이

아직 환갑나이에 꽤 많이 계셨을 텐데....

다 지나고 나니 꿈이고 이제는 책에서나

남양군도 머나먼 남태평양의 이야길 볼 수 있다

 

1998년 아이엠에프 전후에

언제나 그렇듯이 되는 일은 없고

사는게 힘들었을 때

 

서점에서 책 한권을 샀다...

 

쿠웨이트 박으로 기억되는 연속극 우묵배미....

 

원래 박영한의 소설은

더운 여름날 라면 끓여먹는 청춘의 이야기

그리고 월남전

이래저래 춘천인지 서울인지 어느 도서관

서가에서 여러번 본 적이 있었는데

 

<장강>은 그리 많이 팔리지 않았고

평론가들의 평이나 갈채도 없었다

 

그런데 함경도태생 이두삼이란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썼다는 이 소설은

내 두뇌에 깊이 파고들어

 

예전 충북집에서 기억만이 확인해주는 그 반백의 아저씨와 겹쳤다

 

나는 창공사에 전화를 걸어

박영한 작가에게 물어보거나 아무튼 수를 내어

그 이두삼이란 서울 신촌 어딘가 사신다는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성의부족과

10원짜리 내 삶의 그물에 치여 나는 또 잊었고

작가 박영한도 아까운 文材를 놓아두고

환갑도 되기 전에 훌훌 지상을 떠났다

 

그리고 격정시대의 주인공

태항산의 전사 김학철옹도 남녁땅에 수시로 오셔서 강연도 하시더니

질병과 엉뚱한 치료과정 속에서 세상을 떠나셨다

생전에 그 분의 목소리를 못들어본 것이 작은 한으로 남는다

 

마이웨이....

 

인정사정 볼거 없다에서...박중훈의 그늘에 덮히던 장동건이

어느날 큰 배우가 되더니...

유럽의 독일병사로 나온다니..

 

이 영화는 봐야 할 영화나

나에겐 썩 내키지 않는 영화이기도 하다

 

나는 즐겁고 밝은 걸 보고 싶고

만약 먼저 본 관객들에게 사정사정해서

주인공의 해피엔딩이 부재할 적엔

정말 패쓰해야 할 영화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흥행여부와는 별도로

이런 영화를 맹근 강제규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