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이야기

빌리 차일드쉬(Billy Childish) ...최재서와 이상

guem56 2012. 5. 24. 11:49

오래된 기억의 저편에

국어교과서가 있다

 

 

지금은 사라진

봄내시의 미군부대

 

사이렌이 밤 11시 30분에 울리면

밤 열두시엔 통금이 시작되고

 

그래서 그 30분 안에 약사리 고개

죽림성당과 소방서 망루를 사이에 둔

언덕을 넘어

집으로 가야 한다

 

 

낮에도 밤에도

정석책을 풀던 때

 

국어책엔

김광섭의 지금은 제목을 잃어버린 글이 있었다

 

 

거기엔 해방되기 바로 전

감옥에 갇힌 김광섭에게

일본사람들이 종이를 넣어주지 않아

 

글을 쓰고 싶은데

쓸수 없어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김광섭 글보다

먼저 배웠는지 나중 읽었는지 그거까지야 모르지만

 

최재서의 글 <문학과 인생>을  

국어책에서 읽었다

 

 

고등학생은 입시생이라

예나 지금이나

출제 빈도를 생각해야 하고 지문을 보면 감이 온다

 

이글은 대학시험에 나올 가능성이 없다

이미 국어 선생님께서도 열심히 가르치질 않는 소외된 글이다

 

 

관동별곡이나 두시언해는 열심히 외워야 하고

소설이나 현대시에 집중해야 한다

 

 

영수 하기도 바쁜데

간 변두리 과목인 국어에서

출제 가능성이 없어보인다 하면

관심을 끊어야 한다

 

 

그런데 이 글은 한번 읽어선 뭔 말인지 모르겠더니

두고 두고 생각이 나고 여러번 읽었다

 

 

눈 먼 밀턴이

정쟁의 회오리를 벗어나 만년의 고독과 좌절속에서

구술로 실낙원을 썼다는 이야기는 울림이 있었다

 

 

그때 나는 어려서

왜 밀턴이 정쟁에서 밀려났는지

그리고 이 글을 쓴 최재서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다

 

 

다만 최재서의 필체는 유려했고

지은이 또한 어떤 회한이 있어서 이런 글을 썼겠구나 했는데

최재서의 행적은 잘 몰랐다

 

국어참고서에 간단히 나오는 지은이 약력에

그가 친일파라는 구절은 못 본듯 하다

 

 

봄봄의 김유정과 같은 해 태어난 최재서는

일제 감정기 영문학을 공부했고

영국에도 유학을 다녀온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친일문인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인명사전에 자리하고

 

해방후 이래저래 회한에 찬 심정을 <문학과 인생>에 우회적으로 토로한 듯 하다

 

 

이광수에 관한 여러 전기가 있지만

나는 그 이광수에 관한 책은 비켜 간다

별로 읽고 싶지 않아서이다

 

 

이효석이 잠시 조선총독부 직원 노릇을 하고

이상도 일제시에 관공서에서 일했다는 사실은 별로 저항감이 없으나

이광수에게 만은 나약한 지식인의 어쩔수 없는 친일이었다고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면이 있다

 

 

이광수는 그렇게 좀 멀리하고 지냈으나 

최재서의 글은 깊은 회한이 느껴져서 그런지  늘 생각이 났다

 

 장삼이사의 삶에도 무언가 늘 반성과 회한 아쉬움이 있기에

 

해방된 조국에서 떳떳하지 못한 학자의 신분으로 남음에

깊은 회한에 빠진 최재서의 속마음이 남의 일 같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빌리 차일드쉬(Billy Childish 1959~)란 영국 화가가 있다

 

 

시를 쓰고 노래도 부르며 기타를 치는 다재다능한 이 화가는

 

나는 그 내용이 뭔지 잘 모르겠고

중국인들은 반개념주의로 번역한

 

스트키즘(Stuckism)의 창시자이기도 한데

숱한 기행으로 화제를 몰고 다닌다

 

 

 

빌리가 서울에서 미술전시회를 한다

그의 전시한 인물화엔

 

안경을 쓴 이광수와 중절모에 넥타이를 맨 이상이 있다

 

 

빌리는 식민시대에 살았던 지식인의 고뇌에 관심이 많다고 했으며

 

 

80세가 넘어 점령군 나치를 극찬해서 역사에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길이 남은 노르웨이의 작가 크누트 함순(Knut Hamsun)도 그의 관심사에 포함된다

 

 

나는  빌리의 전시회 기사를 보면서

최재서를 생각했다

 

 

한때 문학에 관련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그런 길을 두세발짝을 걸어봤던 옛날이

 

해묵은 굵은 미역위에 올라앉은 흰 석회가루처럼

오늘의 물증으로 기억의 저수지에 떠올랐다

 

내가 글을 세상에 남길지 나는 모르겠고

시한수 떨궈 놓으면 읽을 사람이 과연 있을지 그것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