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이태백 후뻬이성 안류(安陸) 열여섯

guem56 2012. 2. 20. 14:14

중학교 다닐 때 어느날

무슨 자습시간이 되어서

들뜨는 순간에 교감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실망이 크고

최교감선생님은 시한수를 적으셨는데

 

객래문아흥망사 소지남산일편월

혹은 소지노화월일선 이라고 하기도 하던데

 

손님이 찾아와 세상사 묻길래

말없이 웃으면서 남산 하늘에 조각달을 가리키노라

 

어린 나이지만

이야기 솜씨가 대단하신 교감선생님 말씀에 감전되어 그 시구를 기억했다

 

무슨 주제로 더 말씀을 이어갔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고등학교에서 이태백의

별유천지비인간 시구절의

(산중문답)

 

문여하사서벽산 구절을 배웠다

 

이태백이 스무살 넘어 고향 사천성에서 나와

뜻을 펴려다 지금 호북성 효감시(샤오간시) 안류에

십년을 머문다

 

안류의 북서쪽엔 복숭아 꽃이 아름답다는

백조(白兆)산이 자리한다

 

복숭아 꽃이 핀 산이라니

구양봉 장국영이 그리워하던 복사꽃 동네

영화 동서사독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여기 백조산에서 (산중문답)이 태어났다고 보면 된다

 

이태백은 안류(예전엔 안주 安州)에서 재자가인인 허자연(許紫烟)을 만나

결혼하고 딸 평양과 아들 백금을 낳는다

 

안륙에서 이 태백은 안주자사에게

청운의 포부를 보이며 벼슬을 구하는 글을 올리고

 

형주자사에게도 그러한 글을 올려

<여한형주서>는 고문관지에 전한다

 

부부간의 정이 자별했을것으로 추측되는

허자연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뒤 이태백은 두 자녀를 데리고

안륙을 떠나 여러지방을 다니다가

마흔 두살에 장안에 들어간다

 

나이가 40여년 위인

하지장은 이백의 촉도난(蜀道難)을 보고

한눈에 반하고

 

일견여고(一見如故)

한번 보았는데 오래된 친구 같아서

두 사람은 세월의 격을 떠나 문우가 되고

 

일설에 하지장은 당시 신용카드가 없어서

허리에 찬 관리신표인 금거북이를 맡기고 술을 마셨다 한다

 

하여 금귀환주(金龜換酒)란 말이 전하고

이 성어는 후세 많은 시인들이 애용하는 시어가 된다

 

이 태백하면 황학루에서 최호시를 보고 탄식하고 그냥 내려왔다는 이야기와

유유음자류기명   마시는 사람이 그 이름을 남긴다는 시구가 가끔 생각난다

 

태백시를 좋아해서 시집을 가져다니던 홍민도가 기억나고

1977년판 을유문고 이태백 평전이 숱한 이삿짐을 풀고 묶었을텐데

아직 내 곁에 머물러 무상한 세월에 한 점을 찍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