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구양수 풍락정기 소동파 글씨 열아홉

guem56 2012. 2. 23. 13:29

사람들은 바쁘게 살고

살다보면 책 한권 펼치기 힘든 때가 있다가

어느날

 

책이 떠오르고

무슨 책을 한번 읽어볼까 생각하게 된다

 

당송팔가문

오래전에 민음사 판

한유시인집을 사놓고

 

한문을 잘 모르니 제대로 못 보다가

고문관지 한유 글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는데

 

한유와 친했다는 유종원의 문장이 와 닿아서 그 시집을 구했는데

책장에서 쉬고 있을 뿐이다

 

송나라 구양수의 취옹정기는 워낙 유명해서

인터넷에도 검색하면 금방 뜨는데

 

난징의 북서쪽

홍쩌호의 남서쪽에 추저우(저주 滁州)란 도시가 있다

 

구양수는 구설에 말려 마흔살 되기 전에 이곳에 자사로 좌천되었고

여기온 이듬해 풍락정기를 짓는다

 

취옹정기도 역시 추저우에서 지은 것이다

 

소동파는 1057년 아버지 소순을 따라 사천에서 나와

카이펑에서 과거 시험을 보았고 아마 이때

시험채점관이 구양수라

 

 구소서간에 보면

요로에 소순의 문장을 추천하는 구양수의 편지글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구양수의 배경으로 소순은 서울에서 문장으로 이름을 얻은 듯 한데

 

과거시험에는 2등을 했고

전하는 사연에는

 

시험관 구양수가 보기에

이만한 답안지의 수준은 필시 나의 제자 증공이 틀림없겠는데

그렇다면 이 답지를 장원으로 하면

 

스승이 제자를 봐줬다는 소리 나올거 같으니

2등으로 하였고

 

나중에 보니 그 답안지는 소식이란 모르는 청년이었단 이야기가 있다

 

훗날 소동파는 구양수에게 많은 걸 배우고

흠모하는 마음은 여러 글에 나타난다

 

우연히 소동파가 쓴 구양수의 글 풍락정기의 해서 글씨를 구했다

 

비석에 새겼는데 탁본으로 남았고 비는 세월에 사라졌는지

해설부분을 읽어도 자세히 알기 어렵다

 

예전에 소동파의 한식시첩 글씨를 보고

이리 마음가는 대로 쓴 글씨도 있는가?

했는데

 

풍락정기 해서체는 안진경 글씨보다는 살이 얇고

조맹부 글씨보다는 두텁다

 

굳세기 보다는 아름답고

가녀린 듯 힘이 있다

 

이런 글씨는 세상에서 귀히 여길만하다는 해설은 이해가 간다

 

언제부턴가

행서나 초서

 

예서나 전서를 보면

 

오랜 세월 공을 들이면 저런 글씨는

장삼이사의 손에서도 흉내는 낼 듯 한데

 

해서는 그리 보이지 않는다

손에 힘이 있어야 하고

허리에 받쳐주는 힘이 있어야

 

굵은 획의 수백자 글씨가 한나절에 터져 나올 것이다

 

세상은 모바일 시대라

 

따라 쓸만한 누가 지은 글도 없거니와

있어도 따라 쓸 솜씨가 없으니

아예 안타까움도 생길 건더기가 없다~~

 

'글과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청조 녹비홍수 스물하나  (0) 2012.02.25
심괄 몽계필담 스물  (0) 2012.02.24
서위(徐渭)   (0) 2012.02.21
이태백 후뻬이성 안류(安陸) 열여섯  (0) 2012.02.20
레 미제라블 위고와 톨스토이 (열둘)  (0) 2012.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