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곽희 임천고치 소식 황정견

guem56 2012. 6. 21. 13:25

남한강이 충주를 지나

강원 경기의 접선을 이루는

부론의 들판을 질펀하게 흐른다

 

예부터 물길은 수운의 길이고

고려때엔 큰 절이 들어섰다

 

부론 손곡

여기 허난설헌을 가르쳤다는 이달의 호를 따라

손곡초교가 있고

이 학교는 언젠가 폐교되었다

 

산은 얕고 강물은 넘실대는  그 동네에

그림 그리시는 서화백이 살았는데

프랑스 뿌와띠에

거기 몇년 살고 오셨다

 

어느 겨울 문풍지가 바람에 울만큼 추운 날 깊은 밤중에

그 댁에서

곽희의 임천고치 프랑스어판 책을 구경했다

 

달라고 하고 싶었으나 불어를 모르는 내가 볼 책은 아니었다

 

오래된 기억은 사실을 판정하기 어렵다

 

사고전서판본 글씨을 영인한

임천고치가 <문자향>에서 출판되었는데

이 책은 우산동 서점에서 산 듯 하다

아마 그 서점은 지금은 문을 닫았을 거 같다

 

황정견의 시집을 보다가

 

<차운자첨제곽희화산>

시를 보았다

 

거기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옥당와대곽희화

(玉堂臥對郭熙畵)

 

소동파는 1086년

파란 많은 벼슬길과 좌천길에서

모처럼 수도 카이펑에서 한림학사로 있었다

 

팔자가 편한 상황에서 곽희의 그림 구경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황정견의 시는 그 이듬해 1087년에 나왔다

 

이런 구절도 있다

 

단희긍화관작정

십일오일일수석

(但熙肯畵寬作程  十日五日一水石)

 

곽희는 산수를 잘 그렸으나.....

 

그림 그리는 세월이 촉박하지를 않아서

열흘에 물한줄기

오일에 돌하나 그렸다는 말이다

 

그런데 십일오일일수석은

 

두보의 시

<희제왕재화산수도가>의

 

십일화일수  오일화일석

 

오언구 열글자에서 따온 것이다

 

황정견은 두보 한유의 시를 교묘하게 압축을 잘했다

이걸 표절이라고 하기엔 짜임새가 기가 막혀서

표절도 아니고 청출어람도 아니고

 

숱한 사람들이 두고 두고 한시를 읽게 만드는 힘이라면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