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삼연 김창흡 노가재 김창업 그 칠남매 이야기

guem56 2012. 6. 26. 11:57

미산분교

한칸 교실에 어린이들이 글을 배우던 때

미산 개울에 달이 뜨고

개구리 울음이 환한 달빛보다 더 장엄할 때

김창립의 묘지명을 읽었다

 

 

아버지보다 먼저 죽은 아들

그 묘지명을

아버지는

차마 짓지 못했다

 

기사사화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김수항은 

 둘째 아들 김창협에게

네가 아우의 묘지명을 지으란 말을 남긴다

 

김수항 자녀는 6남1녀이다

 

이씨 집으로 출가하여

이씨부인이란 별호가 붙은

외동딸은

 

아마 막내 남동생한테는 손위 누이가 될 테고

다섯 오빠를 두었다

 

을사년(1665)에 태어나

신유년(1681)에 별세했다

 

셋째 오빠 삼연 김창흡은

<제망매문 祭亡妹文>을 남긴다

 

거기 이런 구절이 있다

 

踐雪戴星 奔馳而來 則汝已束殮矣

 

김창흡은

여동생이 병세가 위중할 때 멀리 출타중이었고

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눈길을 헤치고 별이 뜬 밤에도

말을 달려왔는데

이미 렴이 끝난 중이었다

 

이글을 읽다보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

여러 해가 지났다

 

 

임진년

더운 여름날

 

그 여동생을 생각하는 또 다른 시를 만났다

 

넷째 아들 노가재 김창업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시도 잘 썼다

 

그가 남긴 노가재집엔

<망매기일 亡妹忌日>이란 시가 있다

 

水閱雲過三十年

老兄今日尙頑然

何人更識吾心事

臥送寒宵淚似泉

 

세월 흘러 삼십년

나는 아직도 미련하게 살아있네

누가 내 마음 헤아릴까

추운 겨울밤 눈물 흐르네

 

삼십년 지난 날에도

오빠는 죽은 여동생의 기일을 기억하고

상념에 잠겨 시를 적었다

 

저 여동생이 혹시 글을 남겼는지는 모르나

7남매중 여섯 형제는 모두

창창한 글을 산더미로 후세에 물렸다

 

내가 살아서 그 글들을  읽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