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유월말
날은 덥고
비는 오지 않는다
여기 저기 소방서 급수차가 마을을 돌고
떡과 과일을 차려 기우제를 지낸다
전깃불이 아직 안들어오던 때
봄날
누런 황소가 김을 내뿜으며
무논을 갈고
파란 모가 들어앉아
어느날 논물에 그 많던 개구리알이
올챙이 되고 다리가 나와
숱한 개구리 울음이 밤하늘에 퍼질 때
피는 벼와 함께 자라고
밀짚 모자 쓰고
삽자루 뒷짐 에 걸은 노인이
가랑빗방울 이마에 흘리며
콩줄기 앉은 논두렁을 거닐 새
여름은 그렇게 익어간다
그 많던 논일 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경운기 한 대가 달랑 서 있는 푸른 들판을 보면 삭막하다
유리와 벽에 갇혀
에어콘이 숨쉬는 소리를 들으며
먹고 사느라 하루를 보내고 나면
푸른 안개와 이슬이 피어 내리는 새벽을 본 적이
살아서 있었는지 물어는 보나 답은 희미하다
홍세태가 이런 시를 남겼다
<명월암효기 明月庵曉起>
孤懷不能寐
中夜攪依起
落月滿佛殿
秋氣凉如水
老僧獨鳴磬
響出山木裏
頓覺此世空
蕭然釋塵累
달빛이 환한
법당 마당에
잠못 이루는 과객이 서 있다
서늘한 가을기운이 스미고
스님이 치는 석경소리가
산속에 울려 퍼질 때
세상사 덧없음 깨달으니
먹고 사는 시름이 풀어진다는 말 같다
여유와 관조
이런건 책속에 살고 있고
사람들은 월말이 되면 고지서를 해결하고
월초가 되면 다시 찡그리고 일터에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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