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홍세태 명월암효기

guem56 2012. 6. 27. 17:24

임진년 유월말

날은 덥고

비는 오지 않는다

 

여기 저기 소방서 급수차가 마을을 돌고

떡과 과일을 차려 기우제를 지낸다

 

 

전깃불이 아직 안들어오던 때

봄날

누런 황소가 김을 내뿜으며

무논을 갈고

파란 모가 들어앉아

 

어느날 논물에 그 많던 개구리알이

올챙이 되고 다리가 나와

숱한 개구리 울음이 밤하늘에 퍼질 때

 

피는 벼와 함께 자라고

밀짚 모자 쓰고

삽자루 뒷짐 에 걸은 노인이

가랑빗방울 이마에 흘리며

콩줄기 앉은 논두렁을 거닐 새

여름은 그렇게 익어간다

 

그 많던 논일 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경운기 한 대가 달랑 서 있는 푸른 들판을 보면 삭막하다

 

유리와 벽에 갇혀

에어콘이 숨쉬는 소리를 들으며

먹고 사느라 하루를 보내고 나면

푸른 안개와 이슬이 피어 내리는 새벽을 본 적이

살아서 있었는지 물어는 보나 답은 희미하다

 

 

홍세태가 이런 시를 남겼다

 

<명월암효기 明月庵曉起>

 

孤懷不能寐

中夜攪依起

落月滿佛殿

秋氣凉如水

 

老僧獨鳴磬

響出山木裏

頓覺此世空

蕭然釋塵累

 

달빛이 환한

법당 마당에

잠못 이루는 과객이 서 있다

 

서늘한 가을기운이 스미고

 

스님이 치는 석경소리가

산속에 울려 퍼질 때

 

세상사 덧없음 깨달으니

먹고 사는 시름이 풀어진다는 말 같다

 

여유와 관조

이런건 책속에 살고 있고

사람들은 월말이 되면 고지서를 해결하고

월초가 되면 다시 찡그리고 일터에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