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진홍수 소무이릉도

guem56 2012. 7. 19. 16:03

명나라가 망하고

뜻있는 사람들은

청나라에 출사를 피하고

산수를 유람하며

 

그림과 시를 낙으로 삼았다

 

부산(傅山)이나 팔대산인이 그런 사람들이고

 

역시 서화가인

진홍수(陳洪綬 1598~1652)도 그런 길을 걸었다

 

망국의 설움과

회한은

충신 열사와

전원은일의 선비를 그리는데 에너지가 되었다

 

그래서 굴원이 모델이 되고

백낙천도 그림속에 들어앉았다

 

사람들이 읽기 쉬운 시를 썼고

술을 좋아했다는 백낙천은

비파행이나 장한가를 보면

인간의 섬세한 감정과 깊은 한을 노래해서

겉으론 별로 울분이 안드러난다

 

그런데 당나라 8세기 전엽

백거이 삶의 후반부를 들여다보면 그 또한

환관들이 농단하는 썩은 정계에 몹시 실망했음이 드러난다

 

진홍수의 그림중에

<소무이릉도>가 있다

 

소무는 한무제때 흉노에 파견된 사신이고

우여곡절을 거쳐 흉노에 붙들려

갖은 고생을 하고 19년 만에 풀려나 장안으로 귀경했다

 

이릉은 사마천의 친구

5천의 보병을 이끌고 수만 기병과 대적하다가 어쩔수 없이 항장이 되고

그 항복의 사연도 복잡한데 용감한 장수이며 충신임은 틀림없는데

 

성정이 메마르고 잔혹한 한무제는 항복소식이 오자마자 이릉의 가족을 몰살시켰다

이릉은 흉노왕의 대우를 받으며 목양지 푸른 초원에서 한많은 생을 보내고

구금상태에 있던 소무에게 항복할 것을 회유한다

 

역사적 사실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나

진홍수의 그림에선 보다 당당한 소무와 등을 보인 이릉이 등장한다

 

이 그림을 진홍수가 어떤 마음으로 그렸는지

후세에 남겨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금방 짐작은 간다

망국의 유민 진홍수는 지조와 단심의 상징인 소무를 기리고 싶었던 거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

명이 망하기 전에 병자호란이 있었고

설흔을 채우지 못한 오달제는

묵매도를 남기고 세상을 떴다

 

전란과 패배의 상흔은 역사책엔 몇 페이지로 남는데

죽은 사람들의 한은 길고 길어서

서화가 되고

박물관에 자리잡아 두고 두고

가볍게 살아가는 이들을 관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