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

홍루몽 가보옥과 임대옥

guem56 2012. 9. 27. 17:40

부독오천권서자무득입차실

不讀五天卷書者不得入此室

 

19세기 후반

왕희지 살던 회계근처에서

서화로 이름을 떨친

조지겸의 편액 글씨 문구이다

 

책을 읽은 것을 자랑하려 함이 아니고

후배들에게 학문을 권장하려 이런 글을 지었다는 발이 붙어 있다

 

책이란 먹고 살기 바쁜 시대에 점점 멀어지는 물건인데

쉬이 앞뒤가 넘어가는 책이 있고 읽어야 한다는 마음은 있는데

펴보기 어려운 글이 있다

 

홍루몽(紅樓夢)

이름은 들었으되

 

내용이 길며

 

점점이 엇갈리는 운명

이별과 회한

억울한 사연과 죽음이 꽉 들어찬

십일월에 내리는 빗줄기처럼 음산한 분위기라

 

읽고 싶은 마음과

읽지 말아야 한다는 학생과장님 얼굴같은 방어막의 그늘이 늘 섞였다

 

가보옥과 임대옥

그리고 설보채

 

삶은 실타래처럼 얽히고

시간은 흘러가며

누구도 내 발걸음을 가고 싶은 길따라 걷지를 못하는가?

 

겨울이 오고

새봄에 매화가 피기 전에

홍루몽은 다 읽지 못할 듯 하다

 

글자와 자구 문장이 처연하고

글을 쓴 사람의 비애가 그대로 녹아들어서

 

이백의 시가 아니라

두보나 이상은 시처럼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여

그만큼 눈을 오래 두고 구절을 읽어야 한다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황제 삼대를 지나면서

작가 조설근의 가정은 풍상을 겪었고

마치 김유정이 풍족하게 살다가

먹을 것을 걱정한 것처럼

 

조설근은

살아갈 수록 생활수준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졌다

 

그런 삶은

홍루몽의 색조에 그대로 녹아들었고

 

작자는 한을 풀어서 글로 새겼을진대

모르긴 해도 홍루몽이 두고 두고 전세계 서가에 머무를 줄은 몰랐을 거다

 

그 언젠가

 개선문을 읽었을 때

조앙 마두는 다시 못 볼줄 알았는데

 

조앙을 닮은

임대옥을 만나러 간다

 

아카시아 꽃이 피고 지면

예전엔 두텁던

설레임이 사라져서 그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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