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에 가면 조엄선생의 무덤이 있다
일본에 통신사로 가서 고구마를 가져왔다고 한다
19세기
철종이 후사가 없이 별세하자
조대비와 대원군이 협의하여
대원군의 아들을 고종으로 세웠다고 배웠다
조대비는 조엄의 증손녀이다
정조의 아들이 순조이며 순조의 아들이
세자로 있다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서거한
효명태자이며 익종이라는 존호가 있다
조대비는 효명태자의 비다
조대비의 아들인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조대비의 시어머니인 순조의 비 순원왕후가
정조의 이복형제 은언군의 손자인 강화도령 철종을
왕위에 올린다
철종이 죽고 이번엔
대왕대비의 자리에 있는 조대비과 대원군의 둘째 아들을 고종으로 올린다
조대비가 실권을 가졌을 때
박규수는 중용된다
박규수가 19세때
할아버지 연암이 살던 계산초당에
효명태자가 방문하여 박규수을 격려한 인연이 있었고
조대비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1860년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이차 아편전쟁에서 베이징에 진주하고
청나라는 맥없이 무너져서 황제는 열하로 피하고
원명원은 파괴되었다
박규수는 1861년 1월에 청나라 사신단으로 가며
아편전쟁의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상국 청나라에 위문차 가며
1872년에는 서태후 아들인 동치제의 결혼 축하사절로 다시 청나라를 간다
신라시대
뱃길로 가던 중국여정을 조선 사신들은
1872년 동력 기선이 나온지 수십년 후에도
압록강을 건너
가마와 말을 타고 달을 넘겨 갔던 거다
박규수는
불평등한 조약이라는 강화도 조일조약이 성립하는 것을 보고
1877년 2월에 세상을 떠났다
만년에 그는 장차 조선에 미칠 먹구름을 예견하였다
문하에서 수많은 개화파 지식인들이 나왔으나
그들의 차후 행적은 이해관계에 따라 사뭇 달랐다
19세기 20세기 조선과 대한제국을 이해하려면
조대비와 대원군 시기 정권 교체 상황과
조선과 청나라 관계
대동강 셔먼호 사건 이런걸 살피려면
박규수는 두고 두고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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