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man

박규수

guem56 2013. 2. 27. 17:03

원주에 가면 조엄선생의 무덤이 있다

일본에 통신사로 가서 고구마를 가져왔다고 한다

 

19세기

철종이 후사가 없이 별세하자

조대비와 대원군이 협의하여

 

대원군의 아들을 고종으로 세웠다고 배웠다

 

조대비는 조엄의 증손녀이다

 

정조의 아들이 순조이며 순조의 아들이

세자로 있다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서거한

효명태자이며 익종이라는 존호가 있다

 

조대비는 효명태자의 비다

조대비의 아들인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조대비의 시어머니인 순조의 비 순원왕후가

 

정조의 이복형제 은언군의 손자인 강화도령 철종을

왕위에 올린다

 

철종이 죽고 이번엔

대왕대비의 자리에 있는 조대비과 대원군의 둘째 아들을 고종으로 올린다

 

조대비가 실권을 가졌을 때

박규수는 중용된다

 

박규수가 19세때

할아버지 연암이 살던 계산초당에

효명태자가 방문하여 박규수을 격려한 인연이 있었고

조대비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1860년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이차 아편전쟁에서 베이징에 진주하고

청나라는 맥없이 무너져서 황제는 열하로 피하고

원명원은 파괴되었다

 

박규수는 1861년 1월에 청나라 사신단으로 가며

아편전쟁의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상국 청나라에 위문차 가며

1872년에는 서태후 아들인 동치제의 결혼 축하사절로 다시 청나라를 간다

 

신라시대

뱃길로 가던 중국여정을 조선 사신들은

1872년 동력 기선이 나온지 수십년 후에도

압록강을 건너

가마와 말을 타고 달을 넘겨 갔던 거다

 

박규수는

불평등한 조약이라는 강화도 조일조약이 성립하는 것을 보고

1877년 2월에 세상을 떠났다

만년에 그는 장차 조선에 미칠 먹구름을 예견하였다

문하에서 수많은 개화파 지식인들이 나왔으나

 

그들의 차후 행적은 이해관계에 따라 사뭇 달랐다

 

19세기 20세기 조선과 대한제국을 이해하려면

조대비와 대원군 시기 정권 교체 상황과

조선과 청나라 관계

대동강 셔먼호 사건 이런걸 살피려면

 

박규수는 두고 두고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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